다이어리
제목: 세상의 모든 아들들 ( 2009. 11. 04. )
분류: 개인작성자: achor작성일: 2009-11-13 22:59:51조회수: 797추천: 0
파일: 2se_091104a.jpg(976.9 KB) Dn: 31

예상했거나 계획했던 게 아니었기에
후에 알게 될 지도 모르는 2세에겐 서운한 얘기일 수 있겠지만,
사실 갈등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간이 테스트에서의 양성,
병원에서는 아예 초음파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기쁜 마음 한편에선 걱정도 들어왔다.
아직 결혼으로 인한 빚도 많고, 기반도 다지지 못했는데
덜컥 아이라니,
잘 키울 수 있을 지 자신이 들지 않았다.

그간 매체에서 보아왔던
현대사회에서의 아이 키우는 어려움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졌던 게다.

그렇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걱정의 실체는 그게 아니구나, 깨닫는다.


문제는 아버지 될 준비가 되어있는가, 하는 내 자신의 것이었다.

나밖에 모른 채 살아온 나로서는
나보다 더 소중할 다른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가,
나를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란 질문에
당당히 그렇다고 답할 수 없었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기 싫어했고,
말이 통하지 않는 커뮤니케이션 문제에 짜증감을 느끼는 게
내가 가진 아이에 대한 영상이었다.

이런 내가 과연 아이의 아버지가 될 자격이 있는 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열흘이 넘도록 고민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당연히 현 시대의 평균적인 윤리의식을 갖고 있는 내가
도덕교사와 같은 생명윤리를 문제로 삼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태아의 인권보다는 미혼모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또한 첫째 아이는 나아야 한다는 기성세대들의 보편적인 의식도,
소수의 수술은 재출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사들의 견해도
내 선택의 갈등요소는 될 수 없었다.

그저 순수하게 아버지가 될 결심을 했을 뿐이다.

결심을 한 지금 이순간도 자기 희생에 대한 이상적인 다짐은 터무니 없이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부분이라 확신했다.
열 달이 되어감에 따라 내가 변해나갈 것을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내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나 또한 이제 아버지가 될 것이다.

아직은 마음가짐도, 환경도... 모든 것이 많이 부족하고, 모자르지만
지금 가진 이 결심이 모든 것의 시작점이 될 것이고, 모든 것을 바꿔줄 것이라 믿는다.


삶의 장엄한 흐름과
거대한 사회의 메카니즘에
완전히 결합된 느낌이다.

자유와 개혁과 파괴를 꿈꾸었던 스무 살의 나는
이제 완전히 종말을 고해야만 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아들들처럼
나 또한 이제 아버지가 된다.

-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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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i 2009-11-24 15:11:27
아빠가 되는구나~ 축하해..^^
진짜 아빠가 되는게 쉽진 않겠지만...

서은영 2009-12-10 02:50:28
너무 오랜만에 들러서 좋은 소식 많이 보고 간다. 결혼식 때 소식 들었으면 더 많이 축하해 주었을 것을 아쉽네. 좋은 아빠가 될거야, 힘내렴.

achor 2009-12-10 09:31:33
축하 감사들 허이.
10주차. 異世는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지.
아버지가 된다는 게 나도 매우 어색하기만 해.

새삼 인생이라는 게 한 방에 훅 바뀔 수 있다는 것도 많이 느끼게 되고.
아. 아버지라니.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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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03/09/2010 08:3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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