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식 인간 (2004-07-19)

작성자  
   achor ( Hit: 1024 Vote: 5 )
홈페이지      http://empire.achor.net
분류      개인

1.
요즘 일이 좀 다급해진 탓에 간만에 밤을 새며 일을 했다.
모든 멤버들이 이렇게 모두 모여 밤을 새본 것도 참 오랜만인 듯 하다.
이래본 지도 벌써 2-3년쯤 되는 건가.

일이 계속 지연되고 늦춰지다 보니
멤버들 서로간에 짜증과 불만이 쌓이고 있는 와중에서
간만에 손발을 맞춰본 그 의미는 뭐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쩐지 다소간의 압박이 느껴져서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그간 일을 가장 안한 사람이 나이기에 뭐 할 말은 없었지만. --;

어쨌든 요즘 우리 분위기는 별로다.



2.
그러고 보니 캠프가 끝난 지도, 운동이 끝난 지도 1주일이 넘었다.
그 때는 일주일이 이토록 짧게 느껴지지 않았건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니 일주일이 너무도 금방이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우연찮게도 캠프와 운동은 지난 9일,
같이 끝나버렸다.
그 두 가지 내 삶에 있어서 이례적인 일이 동시에 끝나버리니
나는 그것들을 하기 이전의 상태로 완전히 회귀하여 버렸던 것이다.

몸은 편안하지만
마음이 영 찜찜하다.
다시 운동이나 해볼까.



3.
내가 쓰고 있는 컴퓨터는 세 대다.
한 대는 서버로 쓰고 있고,
한 대는 일을 주로 하며,
나머지 한 대는 침대 옆에 놓고 자기 전 영화를 본다거나 음악을 듣는다거나 할 때 쓰고 있다.

그 중 일을 주로 하는 컴퓨터는
간혹 업그레이드를 해주긴 하여 풀3D의 리2를 유연하게 돌릴만큼의 성능을 갖고 있음에도
모든 부품을 업그레이드 해주는 건 아니기에
몇 년이나 된 부품들이 새로운 부품들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
덕분에 때로는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오늘은 모니터가 잠시 문제를 일으켰던 것이다.

이 모니터는 Goldstar 라고 쓰여있는 구식으로
우니구니와 함께 일하던 시절 그의 기증품인 셈이다.
(Goldstar 라고 해서 과거 LG의 전신인 금성사 시절의 모델은 아니고 LG는 상호를 LG로 바꾼 이후에도 한동안 외국에서의 인지도 문제로 영문표기시 LG 대신 Goldstar를 썼었다)

이 구식 모니터는 갑작스레 화면을 까맣게 지워버리고 말았다.
나는 황당해 했지만
별다른 기술적인 조치 없이 한 대 때려주는 것만으로 모니터의 문제를 바로 해결해 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치는 손바닥을 통해 뭐랄까 구식에 대한 향수랄까, 그런 감정이 느껴져 왔다.

핸드폰 카메라는 200만 화소를 넘어 다음 달에 300만 화소, 그리고 11월에는 500만 화소 제품이 출시된다고 하고,
ODD는 메가 단위를 넘어서 한 자리수 기가 뿐만 아니라 두 자리수 제품까지 상용화 되고 있다.
이런 급속한 기술적인 진보를 이제는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여
나 또한 어쩐지 구식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은 회한이 느껴졌던 것이다.

80년대 잘 나오지 않는 컬러TV를 한 대 때림으로써 해결해 냈던 우리 이전 세대의 사람들처럼
나 역시도 잘 나오지 않는 모니터를 한 대 때림으로써 해결하고 있으려니
그 대상만 컬러TV에서 CRT로 바뀌었을 뿐이지,
결국 아무 것도 바뀐 것 없는 것도 같았다.

퇴보하여 퇴보가 아니라
진보하지 않는 것 또한 퇴보라는 그 말을 항상 기억하고는 있지만
이 기술과의 끝나지 않는 끊임 없는 싸움에 결국 한 인간으로서 승리해 낸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 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도태되는 것이 마치 필연적인 일인 양 느껴졌던 것이다.

그 점에서 이 시대를 이끌어온 과거의 영웅이자 현재의 구식 인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 achor WEbs. achor


본문 내용은 7,430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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