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
제목: (아처) CF모델이 된 그 아이를 보며... ( 2000. 03. 20. )
분류: Life작성자: achor작성일: 2000-03-20 21:08:00조회수: 2962추천: 13

『칼사사 게시판』 36077번
 제  목:(아처) CF모델이 된 그 아이를 보며...                        
 올린이:achor   (권아처  )    00/03/20 21:08    읽음: 14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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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말할 수 없어요. 그렇지만 오빠, 2차까지 합격한  사
      람이 2000여 명 중에서 겨우 100명이었다구요. 그러니 전 지
      금으로도 만족해요.
        
        지난 해 한창 세기말, 그리고 새천년의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을 때 그 아이가 내게 했던 말이었다. 그 아이는 그 해 11
      월, 가을이 끝나갈 무렵에 잔뜩 화장을 하고 와서는  자기가 
      무엇인가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은 말할 만한 게  아
      니라며 짐짓 빼면서도 내심  최후의 3명안에 속하기를  많이 
      기대하고 있었나 보다.
        
        약속해요. 3차까지 합격하면 제일 먼저 오빠한테 연락할게
      요.
        
        그 무렵에 난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그저 뭔가 시
      험을 보고 있나 보다, 생각했고 오히려 그보다 더  관심사는 
      탈랜트였던 그 아이의 여동생이었던 것 같다. 그 아이로부터 
      연예계의 잡다한 뒷얘기들을 들으며 웃기도 했고, 놀란 표정
      을 지어주기도 했었다.
        
        그리고 며칠 후 성훈과 종로와 신촌, 그 차가운 거리 위에
      서 술에 취해 잠들었었고, 덕분에 가방과 핸드폰을 잃어버리
      게 된다.
        
        생각해 보면 중요한 것들을  너무도 가볍게 기록하고,  또 
      저장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나 싶다. 고작해야 다이어리와 핸
      드폰을 잃어버린 것뿐이었는데  겨우 그것 때문에  사람들과 
      나와의 관계는 완전히 단절되고 말았다. 잃어버린  다이어리 
      때문에 난 그 아이에게 연락할 수 없었고, 잃어버린  핸드폰 
      때문에 난 그 아이로부터 연락을 받을 수도 없었다.
        
        그리고 오늘, 아주 오랜만에 그 아이의 소식을 들었다. 이
      제는 CF모델이 되어있다던 그 아이. 결국 그 최후의 3명안에 
      들어갔다 보다.
        
        KBS-TV의 TV는 사랑을 싣고,를  보며 초등학생 시절의  옛 
      친구가 아주 유명해져서 나를 한 번쯤 찾아주기를 바랬던 적
      이 없는 건 아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유명한 친구 한 명  정
      도는 갖고 있기를 바란다.
        
        주위의 사람이 연예인이 되어버린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친구의 친구가 걔야, 같은  복잡다단한 관계가 아니라  평소 
      술도 같이 마시고 영화도 함께 보며 이야기 나눴던,  가까이 
      있던 내 주위의 사람이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아주  유
      명한,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모습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제 와서 다시금 그 아이를 떠올려 본다. 눈도 크고,  얼
      굴도 꽤 예뻤지만 사실 그렇게 매력적인 건 아니었던 것  같
      은데... 슬며시 이미지가 떠올려 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아이는 특별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다시 한 번 만나 내 눈을 확인하고 싶
      어졌다. 정말 그 아이가 괜찮았던가, 그토록  아름다웠던가, 
      직접 느끼고 싶다. 하긴 애교도 있고, 또 아주 씩씩하게  살
      아가는 모습이 아름답긴 했던 것도 같다.
        
        칼사사 정모가 있던 지난 토요일은 주연 둘째 누나의 결혼
      식이 있던 날이었다. 그 속에서 난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내 
      동년배들의 모습을 보고 왔다.
        
        하나 둘씩 자기의 자리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내 동년
      배들을 보며, 지난 날 아주 평범한 모습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이제는 세상이 알아주는 유명인이 되어 내 곁
      에 다시 자리매김하는 모습을 보며 조금은 암울해진다.
        
        아마도 내 이전의 선배들, 저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느낌을 받으며 추억의 20대를 보냈으리라. 대학로 거리를 흐
      느적거리며 마음껏 삶의 시간들을 향유하던 시절은 이미  갔
      다는 사실이 슬프게 다가온다. 서른, 진정으로 잔치는  끝나
      는 것일까? 어디 주식이  얼마 올랐고, 어느 부분의  전망이 
      밝다느니, 그런 이야기들을 하며 남은 시간들을 보내야 하는 
      것일까?
        
        오랜만에 박일문을 잃으며  다시금 도가적 사상에  빠져든
      다. 한평생 삶이란 거기서 거기이거니 고작해야 인간사,  연
      연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서로 잘났다고 논쟁하며,  치
      열하게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 쓰는 게 씁쓸해진다.
        
        가끔은 세상의 종말이 다가와 모두들 그냥 콱 공멸해 버렸
      으면 좋겠다. 아무런 미련 없이, 아무런 아쉬움 없이 순시간
      에 그대로 시간이 정지해 버리는 건 만족스러운 일이다.
        
        삶은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것,
        난 이미 지난 가을 소각했건만...
        역시 삶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다시금 소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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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 Webs.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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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03/09/2010 08:3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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