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체 기억이란 것은 완벽하지 못하기에
내겐 약간의 단편으로만 남아있는데,
그것은 바로 학교 앞 길거리에서
친구와 난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고,
그 때 그 친구가 내게 문제의 '도라지'를 선물했다.
당시 내가 느낀 것이라고는
맛보다는 향이었다.
독특한 '도라지' 향은 쉽게 잊을 수 있는 따위의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 이후 다시 '도라지'를 만나게 된 것은
지난 6월 성훈과 입대 전 마지막 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비록 당시는 지금과 비교도 안 될만큼 널널하긴 했지만
(정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다들 이해하리라 믿는다)
서로 시간이 안 맞아 따로 출발하게 된 것이었다.
성훈은 즐겨피던 Marlboro red를 여러 갑 준비했었고,
난 어느 구멍가게에서 산 '도라지' 뿐이었다.
어떤 충동에 이끌려 내가 '도라지'를 사게 됐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으나
어쨌든 난 '도라지'를 샀다. (어쨌든 좋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도라지'에 관한 추억은
로바다야끼에 가서 정말 맛있었던 시원소주를 마시며
'도라지'를 피웠던 기억이다.
그 때 같이 술을 마시던, 그 날 처음 봤던 한 여자는
내 남아있던 '도라지'를
단지 향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만으로
모조리 부러트려 버렸다.
참으로 슬픈 기억이다. !.!
그리곤 어제 그 이후 최초로 '도라지'를 다시 샀다.
다시는 '도라지'를 사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말은 쉬우나 행동은 어려운 법!
난 본능에 따르기로 했다.
여전히 향은 바꿔있지 않았다.
그리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무척이나 독특한
그 도라지 향은 여전했고,
요즘 약한 담배만 펴서 그런지
예전엔 느끼지 못했던,
조금 독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금 '도라지'를 산 것을 후회했다.
후회가 아무 소용 없는 것은 아닐게다.
후회가 쌓이다 보면, 망각의 깊이는 얕아질테니...
마치 그녀가 했던 것처럼
나 역시 남아있는 '도라지'를 부러트려 버리고 싶을 정도였으니...
결국 난 차마 부러트리지는 못했지만
mila schon을 다시 사고 말았다.
'도라지' 소개를 정리해 보자면,
내가 피워본 담배 중 가장 특이한 담배로
가격은 1000원이고 한국담배인삼공사에서 만든다.
'장미'는 비록 장미향이 나지 않지만,
'도라지'는 정말 도라지 향이 난다.
맛은 순한 편은 아니고,
그리 좋은 담배잎을 쓰지 않았는지
전반적으로 구린 맛이다.
특이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결코 권하지 않는다.
ps. 얼마 전 장구를 치는 아이와 인사동에 처음으로 갔었다.
우리는 전통적인 향냄새에 반하고 말았다.
그런 은은한 향이 풍기는 담배가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