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과 관용 (2007-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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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 ( Hit: 923 Vote: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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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D      개인

1.
그간 탈레반에 납치되었던 23명을 보는 내 감정은 그리 좋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그들의 무사귀가를 바래야 한다고는 생각했고, 그러기를 빌었긴 했지만
개인적인 종교적 신념으로 비종교인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특히나 출국 전 아프간 입국을 자제하라는 정부의 주의표지 앞에서 V자를 해가며 찍어놓은 사진은
내 인간적인 자비심을 뛰어넘는 분노를 일으키게 했었다.

결자해지.
개인적인 신념으로 한 일이라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게 정당한 일이라 생각했다.

한편으론 무사귀가를 바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니들이 한 일, 니들이 책임져라,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던 게다.



2.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 중 한 명인 차인표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사실을 안 건 최근의 일이었다.
좋아하되 그의 사생활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니.

결국 내가 그를 좋아했던 참된 인격과 폭넓은 선행은
그의 기독교적인 신념이 가져다 준 것이었다.

이것은 기독교를 다시 보게 된 계기가 됐으면서도
차인표 한 개인에 대한 실망감도 함께 주었다.



3.
노먼 켐버라는 사람이 있다.
2005년 이라크에서 기독교적 평화운동을 하다 납치되었던 영국인.

영국 및 다국적군은 그의 구출에 수십억원의 비용을 소모했다.
또한 그보다 더 귀할 군인들의 생명을 담보로 했다.

그럼에도 그는 무사귀가 후 다국적군에 그닥 감사해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국적군은 결코 이라크 국민의 평화를 달성하지 못할 거라며 다국적군의 사기를 꺾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더 큰 논란은 그의 무사귀가 후 몇 달 뒤 납치용의자들이 체포됐을 때 발생하게 된다.
이라크 법률에 의해 납치 및 인질감금 등의 범죄는 최고 사형에 처할 수 있게 됐음에도
노먼 켐버는 납치에 대한 증언을 거부했다.

보복이 아니라 비폭력정신과 용서만이 피의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는 말과 함께.



4.
한 가지 자문을 해보았다.

만약 납치된 그들이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
삼성의 이건희나 혹은 열심히 일했던 한 평범한 근로자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황이 좀 달랐을 것도 같다.
그 경우 비난은 열심히 일한 피납치자가 아니라 그를 납치한 납치범에게 쏠렸을 것이 분명하다.

개인적인 신념으로 아프간에 간 것처럼
개인적인 이득을 목적으로 아프간에 간 것임에도 말이다.

결국 이번 사건에는
어느 정도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반기독교적인 정서도 작용하고 있는 듯 싶다.



5.
그렇다고 기독교 신자들이 억울해 할 건 전혀 없다.
그들의 배타적인 믿음과 강압적인 전도가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건 두말할 나위 없으니.

차인표와 같은 기독교인도 분명히 많지만
두타스님 사건에서처럼 무개념인 기독교인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기독교의 배타성과 과도한 확장에 대한 교리는 분명 현세에 맞지는 않아 보인다.
각박하고 거칠기만 한 현세에 그들의 자애가 큰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그에 대한 역작용도 만만치 않다.

노먼 켐버의 귀가 이후 행동은 흡사 간디를 연상하게 할만큼 인도적이었고, 평화적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많은 영국인, 전 세계인들의 분노를 일으키게 했다.

모든 범죄인에 대해 관용과 용서를 한다면
현생인류의 정서상 세상은 질서가 확립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심지어 살인을 하고서도 당연히 용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어쩔 셈인가.

그렇다고 대량학살에 관해서만 관용을 배푼다면
작은 죄는 처벌받고, 큰 죄는 처벌받지 않게 되어 법률의 형평성을 심각하게 위반하게 된다.

간디가 비폭력, 무저항을 했던 탓은
그가 폭력적인 저항으로 성과를 거둘 수 없었던 약자였기 때문이 아니었는 지 생각해 보게 된다.
국가적인 군사력이 월등한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타국의 침략에
비폭력, 무저항으로 대응하여 자국민들이 고통을 겪게 된다면
그것이 바른 길인 지 확신을 품을 수가 없다.

관용과 용서라는 것은
분명히 강자가 약자에게 행할 수 있는 행동일 것인데
강자로서 관용과 용서를 배풀 때
더 큰 피해가 생긴다거나 사회질서가 훼손되는 게 현실이라면
결국 그것은 관념적인 가치밖에 되지 못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고 인심쓰듯
한 번은 관용과 용서를 하되
다시 걸리면 죽는다, 하는 것도 좀 우습지 않은가?

개인적인 신념이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관용과 용서와 맞닥들었을 때
우리 사회의 반응은 어떨 지 기대가 된다.
기독교의 역작용이 팽배한 상황 속에서 기독교적 실천이
앞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해 갈 지 궁금하다.

분명한 건
적어도 독실한 기독교인과는 결코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내게 있어서만큼은 이것은 결혼조건의 1순위이다.

-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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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09/06/2021 17:5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