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차 (2008-04-27)

작성자  
   achor ( Hit: 111 Vote: 0 )
홈페이지      http://empire.achor.net
분류      개인

이 땅의 직딩들이 왜 그리 여유 없이 사는 지 절실히 체감한 한 주다.
한 마디로 힘들고 빡셌다.
꽉 짜여진 일상과 사회적인 선택의 연속이었다.

이제 고작 3주차건만
별다른 인수인계도 없이, 업무파악의 시간도 없이
맡은 일만 한 가득이다.


한 번 가보지도 못했건만 월요일에 런칭하는 골프 관련만 5개나 맡고 있고,
용어조차도 혼란스러운 파이낸셜과 캐피탈을 기획하고 있다.
예전 어머니 냉장고 사드리느라 잠시 다녔던 회사가 골프용품 관련하기도 했고,
아버지 골프치실 때 집에 설치해 두신 퍼팅연습기 몇 번 쳐본 적은 있지만 뭐든 별 도움 안 되고,
아처웹스. 시절 카드 돌려 쓰던 대출도 아무 도움이 안 되긴 마찬가지. -__-;

이직 하자마자 어쩌다 보니 끼게 된 기획 관련 스터디 모임은
알고 보니 유일하면서도 처음 시작된 것이기도 하여 과도하게 의욕적인 면이 있고,
또 사내 젊은 브레인들의 CoP적인 면도 있어서
기획쪽 경력이 부족한 내겐 다소간의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며,
결정적으로 그렇잖아도 바쁜데 다음 주엔 발제까지 해야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서서히 그 실제가 드러나고 있는 헤게모니 다툼.
그간 실세였던 이를 쫓아내고 새롭게 다른 이가 권력의 핵심에 서게 된다는
그렇고 그런 3류 영화 이야기인데
문제는 그 쫓겨난 이가 우리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던 前 팀장이고,
쫓아낸 이가 누구보다도 나를 챙겨주고 있는 학교 학과 직속선배라는 점.
줄 잘 서고, 성공지향적으로 사는 모습에 경멸감을 느끼는 나로서는
사이에 껴 있는 상황이 난처하기만 하다.

프림과 설탕 팍팍 들어간 다방커피와 인스턴트커피를 좋아하는 내가
비싸기도 하고, 맛대가리도 없는 카페라떼나 카푸치노를 마시는 거나
육류가 물에 잠긴 걸 좋아하지 않는 내가
설렁탕이나 갈비탕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것도
원치 않으나 의지적으로 택하는 사회적 선택인 셈이다.

바쁜 탓에 새로 이사갈 집은 아직 알아보지도 못했는데
살고 있는 집은 이미 나가서 주인은 어서 방 빼달라고 독촉이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만큼 산재한 짐들을 싸야 하는 것도
나를 난감하게 만들고 있다.

그 중 최강은 무엇보다 수면 문제.
자야할 시간에 졸리지 않고,
자지 않아야 할 시간에 졸리다는 건 심신을 정말 지치게 한다.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고,
나름 적잖은 각오를 하고 들어선 길이긴 하지만
그간의 내 삶과 너무 다르기에 쉽지 않다.

육체적으로 힘든 건 괜찮은데
정신적으로 여유 없이 황폐화 되어가는 것 같아 그 점이 너무 아쉽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시간 그 자체를 즐겼던 삶의 즐거움이 완전히 훼손돼 버린 것 같다.

물론 곧 익숙해 질 것이다.
누구나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데
똑같은 한 인간인 내가 못해낼 리 없고, 혼자 고통스러워 할 까닭도 없다.

다만 어쩌면 삶을 위해서 더 중요할 지도 모를
소중한 창의력과 기발한 상상력이
이렇게 사라져 버릴 것 같아 좀 두렵긴 하다.

분명한 건
어려움도, 아쉬움도 많은 시간이긴 하지만
아직은 만족하고 있다는 점이겠다.

그간 좀 고립되어 일해 온 것에 비한다면
나는 적어도 생동감은 있어졌다.
이 거친 세상의 한 구성원으로서 활기차게 숨쉬고 있다는 건 분명하겠다.

- achor


본문 내용은 6,053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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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2016-01-24 01:29:44
지나치다 우연히 다시 읽게 되었고,
비공개였던 글을 다시 공개로 돌려 놓는다.

비공개였던 까닭은 아마도 회사 사람들이 보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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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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