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2008-06-09)

작성자  
   achor ( Hit: 1776 Vote: 23 )
홈페이지      http://empire.achor.net
분류      개인

1.
민주화 운동에 한창 관심 있던 고등학생 시절
나는 새삼 내 아버지의 발자취가 궁금했던 적이 있다.

그 치열했던 70년대,
대학생으로 존재하셨을 내 아버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러나 나는 아버지께 직접 여쭤보지 못했다.
머리 커진 아들과 아버지 사이의 자근자근한 대화가 좀 껄끄러웠던 탓도 있겠고,
또 나는 이미 아버지가 ROTC로 병역의 의무를 마쳤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물론 내 아버지라고 그 시절 대학생으로서의 양심이 없었겠냐만
TK 출신 보수적 색체가 다분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오셨던 내 아버지가
박정희 정권 타도를 위해 피 흘리지는 않았을 거라고
아직까지도 생각은 하고 있다.

아닐 지도 모르겠지만...



2.
내 아버지의 초등학교 졸업사진을 봤을 때
나는 그 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서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내 할아버지였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란 적이 있었다.
그 시절은 그랬을 지도 모르겠지만 내겐 젊은 교장선생님이라는 게 너무 낯선 일이었다.

그 치열했던 일제 치하,
지식인으로 존재하셨을 내 할아버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러나 나는 이번에도 할아버지께 직접 여쭤보지 못했다.
과묵한 성격의 할아버지는 가족 사이에서도 말이 없는 분이셨고,
또 나는 이미 논밭 팔아 독립운동 했던 이들은 교육의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물론 내 할아버지라고 그 시절 한국인으로서의 양심이 없었겠냐만
조용하고, 정적이셨던 내 할아버지가 비록 일제에 찬동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독립을 위해 피 흘리지는 않았을 거라고
아직까지도 생각은 하고 있다.

아닐 지도 모르겠지만...



3.
만약 내 아들이
훗날 언젠가
"아버지, 그 해 그 날 무엇을 하고 계셨나요?",라고 물어왔을 때
"그 때 나는 시청광장에, 종로거리에 서있었노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길 바란다.

그것이 내가 내일
6.10 민주항쟁을 맞이하여 촛불문화제에 나가려는 유일한 이유이다.

가자. 이땅의 아버지, 어머니들이여.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운 것은 아니었지만
바쁜 일상과 험난한 일과 속에서
그래도 나름의 최선은 다했노라고 이야기 해보자.

- achor


본문 내용은 6,011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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