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를 보내며... (2008-12-28)

작성자  
   achor ( Hit: 2460 Vote: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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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개인

긴 휴가였다.

네트웍 공사를 해야한다는 이유로 반강제적이었던 바 없잖았지만
이직 이후 처음 써본 연차다.
굳이 연차를 아끼려 했던 건 아니었고, 그저 써야만 할 특별한 날이 없었다고나 할까.
새삼 삶이 무미건조 했던 건 아니었나, 반성해 본다.

덕분에 리듬은 완전히 깨져버렸다.
평소에도 늦은 취침이었지만 아침 6시가 되어 가는 지금까지도 말똥말똥 하기만 하다.
연말임에도 회사 내외적인 업무가 가득 쌓여 있어
이제 몇 시간 후면 다시 빡빡한 일상이 시작될 것인데 걱정이 앞선다.

특히나 내일은 계열사 대표님까지 참석하는 시연회인데
지난 여름, 제안설명회 때에는 전날 늦잠에, 낮잠까지 못잔 더블크리로 꾸벅꾸벅 존 바 있어서
이번에도 졸거나 지각하면 그냥 죽는 거다. -__-;



고작해야 얼마나 됐다고
작년 이맘 때 즈음의 삶이 생각나지 않았었더랬다.

자유롭고, 평온했던 것 같은 기억은 살아있었지만
24시간이나 되는 일상을 무엇에 어떻게 소비하고 있었는지 떠오르지 않았었다.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시간만 흘러 있었다.


나는 그 답을, 이번 긴 휴가를 통해 기억해 냈다.

기억에 남을 만큼 무언가 하지 않았음에도
충분히 바쁜 일상이 될 수 있다는 걸 근 1년만에 다시 체감했다.
비생산적이고, 비상식적이며, 나태하고, 게으른 일상이
무의미 하지 않다는 걸 다시금 느꼈던 게다.

지난 24일,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해야할 일들을 싸들고 와서
연휴에 잘 해놔야지 했으면서도
사실은 하나도 해놓지 못한 채
소박한 잡일과 , 오래된 친구, 적당한 알콜과 함께 시간을 축냈고,
그것은 나를 연휴 내내 여유로우면서도 분주하게 했다.
나는 그 시절, 그렇게 일상을 보냈었다.

그래, 이것이었다.
나는 1년 전 즈음에 이렇게 일상을 소비했었던 게다.
자유롭고, 평온했던 기억은 바로 이것이었다.
약속은 취소될 수 있다는 자유, 오늘 해야할 일을 내일 해도 된다는 평온함.



틀어 놓은 경제TV에서 패널들의 대화가 들려온다.
신입사원, 홀로 사는 독신남 등 각 유형별로 어떻게 재무설계를 해야 하는 지 설명해 주고 있나 보다.

대충 듣기로도 내 삶과는 많이 어긋나 있다.

저렇게 살아야겠구나 생각이 들면서도
너무 갑갑하고 빡빡한 삶이 아닐까, 그렇게 한 평생을 보낸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한다.

여유 없는 이 세상의 치열함이 안타까워 진다.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살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이 답답해 진다.


1년 전 즈음에,
무엇을 하며 24시간이나 되는 긴 시간을 흘러 보냈는지 기억나지 않던 그 즈음에
나는 여유롭게 세상을 관조했었었다.

고작해야 얼마나 지났다고
매너리즘에 빠진 일상 속에서는 그 의미를 잊어버렸었지만
삶은 일상보다 중요할 것이기에
사실은 그 시간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생산적이었고, 미래지향적이었던 것이다.


내년의 일상은,
어쩌면 더 바빠질 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 그럼에도 굳이 나아가려 하는 걸 보면
나도 좀 이율배반적이긴 하다.
자신이 없다기 보단 귀찮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겠다.

- achor


본문 내용은 5,812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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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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