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처) 끄적끄적 76 삶 (1999-09-05)

작성자  
   achor ( Hit: 1492 Vote: 2 )
홈페이지      http://empire.achor.net
분류      끄적끄적

『칼사사 게시판』 34135번
 제  목:(아처) 끄적끄적 76 삶                         
 올린이:achor   (권아처  )    99/09/05 00:19    읽음: 51 관련자료 있음(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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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잠잠했었는데  또다시 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한
      다. 무언가  해야한다는 억압, 이대로 그냥  있을 수 없다는 
      불안감,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초조...

        오랜만에 주말을 집에서 보냈다. 주말을 집에서 보내는 건 
      너무나도 오래되어 다이어리에서 도무지 찾을 수 없고, 주말 
      밤거리를 싸돌아다니지 않은 건  2달이 넘었나 보다. 그러고 
      보면 그간 난 정말 정신없이 헤매고 다닌 듯 하다.

        용가리를 보다 학원에 가서  보충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
      오니 17시  무렵. 한숨 낮잠을 하고  일어나 박찬호의 9승을 
      재방송으로 보며 또 잠들었다. 북적대는 소리에 깨어나 보니 
      부모님 친구분들이 몰려오셔서 집안을 온통 난장판으로 만들
      고 계셨다. 짜증이 났다. 오랜만에 집에서 쉬어볼까 하고 있
      는데 이건 쉬기는커녕 스트레스만 쌓이게 했다.

        친구분들이 가신 후 집안은  온통 유학 얘기다. 무슨 장학
      금으로 일본에 간다며 직설적이지는 않았지만 내 부모님께서
      는 언뜻 내게 눈총을  주곤 하셨다. 어쩌면 내 자격지심일지
      도 모르겠지만.

        가만히 물어오신다. 넌 무엇을 할거냐고.
        난 대답한다. 전 더이상  공부할 생각이 없으니 자식이 공
      부로 명성을 얻는 꿈을 아직도 꾸신다면 이젠 포기하시는 게 
      나으실 겝니다.
        다시 물어오신다. 그럼 무엇을 할거니?

        할 말이 없다. 벌써  23이란 나이임에도 내 미래에 아직까
      지 아무 준비도 해놓은 게 없다.

        사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건  음악이다. 인기가수보다는 
      매니아를 몰고 다니는 가수가 되고 싶은데 그게 내게 있어서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는 나도  알고 있기에 단순히 7살 먹
      은 꼬마의 꿈만큼만 바라고 있다. 그리하여 대안을 객원가수
      를 쓰는 작곡, 작사가로 잡았지만 이 역시 내 능력과 적성으
      론 무리다.

        처음 내가 경제학과를 택한  까닭은 고등학교 시절 경제를 
      좋아했던 이유도 있겠지만  외환딜러라든가 컨설턴트, 또 그 
      시절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모의주식 등을 하면서 꿈꿔왔
      던 펀드매니저 같은 직업들이 정말 멋있어 보였던 이유가 가
      장 크다. 고등학생 시절은 지금보다도 더욱 미숙했기에 영화 
      속에서나 멋있게 나오는, 누구보다도 바쁜 Newyorker를 동경
      했었다.

        아직 이 환상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그러기에 여전
      히 가끔 꿈꾸기도 하지만 내 능력을 배제하고 전적으로 내가 
      그런 사람이 된다는 가정을 하여도 썩 내키는 건 또 아니다. 
      내 삶을 일에 모조리 받치고 싶지는 않다. 창조의 조건은 널
      널함이라고 굳게  믿는다. 생활에 바쁜 사람은  결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낼 수 없을 거라 본다.

        결국 처음으로 돌아가게 되는  게다. 또 그게 비참한 일이
      고. 아무리 강태공이나  한명회를 상기하며 조급해지지 않으
      려 해도 나를 제외하고 세상이  너무 빨리 돌아가는 것 같아 
      어쩔 수가 없다.

        한양대가 싫다. 왠지 한양대는 기업에 유능한 사원을 만들
      어내는 공장 같은 느낌이  들어 싫다. 대학은 그래서는 안된
      다고 생각한다. 대학은  순수한 학문에의 정진만이 길이어야 
      하고, 열정으로 가득 찬  젊은이 특유의 맹목적인 투지가 있
      어야할 것 같은데  요즘 대학은 전혀 그렇지  않아 싫다. 또 
      요즘 대학생들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전근대적인 고시에 미
      쳐있는 사람이나 새로운 물결에 뒤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
      듯 구태의연한 사회  속으로 뛰어들고자 적극적인 대학생들, 
      그들이 싫다. 대학생답지 않은  양아치들도 싫고, 편견과 자
      기애로 가득찬 속물들도 싫다.

        그런데 그게 나다. 그래서  변명하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
      면 바로 사회에 진출하게 되는 것인데 대학은 꼭 순수학문만
      을 탐구해야 한다면 이론과 실전이 따로 노는 무의미한 일이 
      아닌가! 90년대, 이미  문화는 다양화, 세분화되었는데 이에 
      무조건적인 반발을 일삼는 짓이야말로 시대적 흐름에 대응하
      지 못한 자의 구차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 사내아이는 변명을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렇게 변명
      을 늘어놓고 있는 꼴이라니, 젠장, 나도 정신이 어지간히 나
      가긴 나갔나 보군.

        이 시대에 적합하게  살아가는 건 참 힘든  일인 것 같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준비해
      야하는지 모르겠다.  미래에 대해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23이란 나이는 슬프도록 초조하기만 하다.

        아마도 이토록 구차하게 내가  불안해하는 까닭은 나 역시 
      속물근성, 다시 말해 사회를  향한 준비를 이미 많이 해놓은 
      사람을 욕하면서도 나 역시  그렇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 곧 
      질투심을 갖고 있기 때문일 터인데 욕심을 버려야지, 버려야
      지 하면서도 성인이 아닌 이상 쉬운 일은 아니다.

        초연해지고 싶다.
        무엇에도 연연해하지 않고 내가  하고픈 대로 살아가고 싶
      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지닌 철인이 되고 싶다.
        내 생각이 완벽해지길 바란다...

                                                            98-9220340 건아처


본문 내용은 9,215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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