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처) 문화일기 171 Battle Royal (200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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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 ( Hit: 3529 Vote: 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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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문화일기


『칼사사 게시판』 38552번
 제  목:(아처) 문화일기 171 Battle Royal                            
 올린이:achor   (권아처  )    01/10/11 17:14    읽음:  0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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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ttle Royal, Kinji Fukasaku, 東映, 2000, 영화, 일본
        
        언젠가 신문에서 일본의 청소년들이 Battle Royal에 열광하고 있
      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고, 그 내용이 법에 의하여 한 사람이 살아
      남을 때까지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것이라는 데에 다소 우려하였던 
      기억이 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난감해졌다.
        
        Battle Royal에서 살아남은 슈야와 노리코는  지명수배자가 되어 
      세상에서도 여전히 '살아남기' 위해서 무기를 지니고 다닌다. 영화
      는 지겨운 권선징악도  아니고, 무엇을 해결해  놓으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영화는 현실의 경쟁사회를 극단화 시켜놓은  후 단지 그대
      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보이지 않는 타인에 대한 살인을 
      쉬운 예를 통하여 가시화 시켜놓았을 뿐이었다.
        
        나는 그들이 무기를 소지하고 다니는 모습에서 15세 이상 관람가
      로 일본에서 상영됐던 그 영화가 청소년으로 하여금 무기를 소지하
      라는 영향을 끼칠까 우려되었다. 쉽게 친구의 목을 자르고, 선생님
      에게 총을 쏴버리는 그러한 현실이 올 게 두려웠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나를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21살에도 구분했
      었던 영화와 현실을 25살인 지금에 와서 나는 구분 짓지 못하고 있
      다는 걸 발견했다.
        
        21살 즈음에 나는 무고한 사람을 대상으로  살인을 즐기는 Funny 
      Games 같은 영화나 In the Miso Soup 같은  소설을 좋아했었다. 아
      직도 나는 그 영화와 소설을 괜찮은 작품이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
      는데, 비슷한 계통의 이 Battle Royal을 단지 내 나이 25살에 보았
      다고 해서 다른 평가를 내리는 건 어쩐지 억울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만큼 늙어버렸던 것이었다.
        내가 이 자명한 진리를 깨닫는 데에 Battle Royal이 필요했던 만
      큼 나는 늙어버렸던 것이다.
        
        나는 내 안위와 내가 살아갈 이 나라를 걱정하는 그런 어른의 모
      습이 되어버렸다. 21살 시절보다 무엇을 더 쥐고 있다고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을 잃어버리는 게 두려워 안위를 꿈꾸고 있고,  또 그 시
      절 괜한 노파심으로 치부해 버렸던 어른들의 기우를 지금, 나 또한 
      하고 있었던 게다.
        
        오스트리아 영화, Funny Games에서도 주인공들은  단순히 재미있
      는 놀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주위  사람들을 죽여나간다. 또한 
      우리가 끈질기게 받아온 종교와 도덕의 터부를 하나하나 깨트려 나
      간다. 나는 그런 파괴력에 열광했으며, 한동안 Funny Games을 내가 
      본 최고의 영화라고 이야기하였었다.
        
        In the Miso Soup 또한 예외는 아니다. 나는 책에 村上龍의 사인
      을 받아놓을 만큼 그를 좋아했고, 그가 아무것도 아닌 듯이 풀어놓
      은 마약이나 섹스, 살인 같은 이야기에 찬사를 보냈었다. 村上龍은 
      그저 그런 대중작가란 새로운  나름의 평가를 내리기  전까지 나는 
      그를 아주 좋아했었다.
        
        내가 만약 21살이었다면,
        나는 Battle Royal에 그 시절처럼 열광했을 지도 모른다.
        
         잠시나마 철없고 멍청한 아이들이 외세문화에 물들어있구나, 생
      각했던 그 아이들을 종교와  도덕의 터부를 깨는  투철한 선구자로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화가  청소년의 사고를 지배
      하여 실제적으로 이런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마음을 괜한 기우로 여겨버리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 영화는 말한다. 세상은 강자만이 살아남는 곳이 되어가고 있
      다. 누구라도 자신의 무기  하나쯤은 소지하고, 내가  살기 위하여 
      남을 죽여야 한다. 여기까지.
        
        그리하여 멍청하고 못생기고  힘없는 사람은 모두  제거된 상태, 
      우성인자만 살아남은 경제적으로 최적화된 상태에서 가장 효율적인 
      세상이 건설되어야 한다.
        
        혹은 그런 살벌하고 피비린내 나는 세상이 오지  않기 위해 모두 
      다같이 손잡고 밝은 사회 건설을 위해 힘쓰자, 정도.
        
        감독처럼 나 역시 어떤  결론을 이끌어 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단지 이런 소설, 영화를 만들어내고, 또 버젓이 상영될 수 있는 문
      화적 환경에서 살고 있는 일본인이 부러웠다.  영화를 보고 판단할 
      권리는 다수의 국민에게 있는 것이지, 스스로  특별하다고 믿고 있
      는 무지한 소수에게 있는 건 아님이 분명할 테니.
        
        어쨌든 감동을 주거나 깊은 깨달음은 주는 그런 영화는 아니었지
      만 특별한 느낌을 준 영화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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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