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한 동전 (2001-10-21)

작성자  
   achor ( Hit: 814 Vote: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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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개인

비정한 동전

지금 시각 새벽 6시 30분.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을, 아처웹스. 멤버들은 퇴근준비를 할 시각이지만
오늘은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앞으로 몇 시간 후에 친구 결혼식이 있지 않습니까.
그 결혼식에 사회를 맡은 제가 졸린 눈을 억지로 뜨고 있을까봐 걱정이 됩니다.

제 일이라면 뭐 상관이 없겠습니다만
제 친구의 일생일대의 이벤트에서 믿고 맡겨준 친구의 신의를 배신하고
내내 졸린 눈에 졸린 목소리로 그의 결혼식을 사회보게 된다면
얼마나 미안할까요.

그렇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기분 같아서는 일찍 잠을 자주고 싶었지만
오늘 일요일 자정까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끝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1년 가량 미뤄왔던 PHP+Flash 연동에 관한 강좌 사이트 제작인데
예상하셨다시피 돈 되는 일은 아닙니다.

이번 학기에 html 수업을 하나 듣고 있는데
필기로 치룬 중간고사 외에 사이트를 하나 만들어 내라는 실기 시험이 더 있어서
이렇게 막판 고생하고 있는 것이지요.

제가 이렇게 열심히 학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분이 계신 것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라고 4년 동안 한 번 정도 A+ 맞고 싶지 않겠습니까.
이 과목에서 저는 내심 제 생애 최초의 A+를 노리고 있습니다.

인터넷 수업으로 진행되는 만큼
이 수업만큼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결석한 적이 없고,
게다가 매주 보는 리포트, 과제까지도 완벽하게 해내고 있습니다.
예. 정말로 제겐 드문 일이지요.

또한 주제가 html이기에
평균 65-70점 가량 되는 상황에서도
저는 내내 90 이상을 얻어내고 있지요.
400명 가량 되는 수업 인원 중에서 단연 최고의 수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과목만큼은 제 대학 생활의 전략과목으로 지정,
반드시 A+를 맞아보고 싶습니다.
1학년 시절 리포트 한 번 안 쓰고 시험만으로 A를 받았던 컴퓨터 수업이 제 최고의 학점이거든요.
다른 과목에서도, 또 앞으로 다닐 1년 혹은 그 이상의 수업에서도
저는 A+를 맞을 자신이 없습니다.
이번만이 제가 A+를 맞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지요.

그럼에도 벌써 7시가 다가오기에
친구의 결혼식도, 또 A+도 모두 걱정이 되어 결국은 운명의 동전을 던져보기로 했던 것입니다.
이럴 때 써먹으려고 만든 게 운명의 동전이니 말입니다.

아!
그러나 비정한 운명의 동전은...
제게 일이나 하라고 말하더군요. !_!

좋습니다.
철저한 운명론자인 저는 동전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것입니다.

저는 계속 일을 하여 일을 무사히 마치고
친구의 결혼식에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사회를 볼 것이며,
이후 있을 쌈박한 신부 친구들과의 피로연에서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채
터벅터벅 사무실로 돌아와 잠이나 잘 것입니다.

그것이 제 운명이라면.
제 미래가 그렇게 예정되어 있다면.
좋습니다. 따라주겠습니다.
슬프고, 아쉽지만 따라주겠습니다.

아. 내 퀸카들이여. !_!

- achor WEbs. achor


본문 내용은 8,460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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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