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히 기다리리라 (2003-10-11)

작성자  
   achor ( Hit: 1005 Vote: 18 )
홈페이지      http://empire.achor.net
분류      개인

1.
어렸을 적 동네에 살던 어머니 친구분 딸이 오늘 결혼을 했다고 한다.
나 초등학교 4학년. 그 아이 초등학교 2학년.
가까운 어머니들 사이 덕분에 종종 보긴 했었지만 그 시절에는 2살 차이라는 게 너무나도 큰 격차라서
그 아이는 내게 너무 어린 꼬맹이였다.

지난 밤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통해
그 아이가 어느덧 25살이 되었고, 결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물론 그 아이의 이야기가 나와 직접적인 연관은 전혀 없었지만
어느새 시간이 그토록 흘러버렸고,
또한 주위의 25살짜리 여자아이를 생각해 보면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 어린 시절의 모습과 쉽게 매치하기 어렵다는 데에 좀 혼란을 느꼈다.

얼마 전 칼사사에는 처음으로 주연이가 결혼을 했다.
나는 아직 결혼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데
결혼은 훌쩍 내 곁에 다가온 느낌이다.



2.
이기적인 모습을 많이 갖고 있는 나임에도 이상은 있어서
마치 중세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 나올 법한,
아주 용감한 기사가 되어 사랑스런 한 공주를 영원히 지키고, 보호하고픈 열망은 나에게도 있다.

그러나 오늘 깨달은 진실은.
내 딴에는 정말로 누군가를 특별히 위해준다 하여도
또다른 누군가가 범용으로 대하는 친절함보다 못할 수도 있다는 것.

비극적인 세상이다. !_!



3.
어렸을 때 내 꿈은 우스꽝스럽지만, 세계정복이었다.
(그래. 좀 웃어라 --;)

미약한 나 따위가
사랑을 하기에는
꿈꾸는 이상이
너무 큰 것은 아닌가 생각을 했다.



4.
그것이 그간 내가 살아오며 행해온 많은 악행에 대한 응답이라면,
내가 짊어지고 가야할 내 업보라면
피하지 않으리라.

외롭고 쓸쓸한 삶이
그간 내가 범한 타인에 대한 슬픔과 고통의 형벌이라면
인정하고 받아드리리라.

언제가 될 지 모른다 하여도
내 업보가 끝나는 날 다가올 사랑을 위하여
고요히 기다리리라.

- achor WEbs.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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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rina2003-10-12 06:32:21
왜 소개륑이 시원찮은가부지? .. ㅡ_- .. 역시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긴 한듯하다. 문득 그런생각이 드는구나.
내 소개륑은 잊지말아다오.

 美끼2003-10-16 09:47:29
'내 딴에는 정말로 누군가를 특별히 위해준다 하여도
또다른 누군가가 범용으로 대하는 친절함보다 못할 수도 있다는 것.'
맞는 말이네.......쌀쌀한 날씨만큼 마음이 추워지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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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