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슬펐다 (2004-02-11)

작성자  
   achor ( Hit: 1145 Vote: 17 )
홈페이지      http://empire.achor.net
분류      개인

1.
이상하다. 오늘은 좀 이상하게,
슬프다.
아무 슬플 이유도 없는데 말이다.

뉴스를 봐도, 음악을 들어도, 게임을 해도
가슴 어디에선가 아스라한 슬픔이 밀려온다.



2.
수요일에는 요즘 거의 함께 살고 있는 vluez가 교회에 가는 날이다.
그리하여 내게 거의 유일한, 혼자 있는 날인 셈이다.

좀 외로웠던 것일까?

혼자 있을 때면 지난 몇 년간의 추억들이
사물 곳곳에서 느껴져 온다.

이를테면,

스포츠뉴스를 보는데 농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저 대학생 시절의 젊은 김병철로 기억하건만
어느새 앵커는 고참선수 김병철이라고 소개한다.
세월이 느껴진다.



3.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욱 내가 과거를 그리워 하고, 또 슬퍼하고 있는 건
지금 내가 내 삶에 만족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란 걸 알고 있다.

물론 내가 그리워 하는 몇 년 전에도 역시
그 몇 년 전이었을 중, 고등학생 시절을 그리워 했었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당시의 만족감이 그 이전의 그리움보다 더 컸기에
그저 아름답게 회상하면 그만이었을 뿐, 굳이 슬퍼할 까닭은 없었던 게다.

지금 나는,
무엇에도 큰 만족감이나 희망, 열정 같은 걸 갖고 있지 못하다.
아마도 그것이 오늘 나를 슬프게 만들었을 지라.



4.
나와 같은 나이의 한 청년이
업계 2위인 게임업체 넥슨의 사장이 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분명 나 역시도
지금 이순간, 28살이란 나이에 일에 매진하고, 바쁜 나날을 보낼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것저것 다 고려해 준다 하여도,
그래, 내가 그간 좀 게을렀고, 이미 삶을 엉망으로 많이 훼손했다 하여도
나이를 먹는다는 건 역시,
슬픈 일이다.

적어도 무언가 할 수 있는 그 가능성까지도
약탈당하고 있다는, 자명한 진리만으로도.
마음껏 도전하고,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당했다는 이유만으로도.

- achor WEbs. achor


본문 내용은 7,573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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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