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훈의 결혼 (2004-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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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 ( Hit: 1781 Vote: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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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성훈의 결혼은
너무도 금새 다가왔고, 그리곤 너무도 금새 끝나버렸다.

나는 성훈의 결혼을
마치 내 결혼의 전초전인양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다.
인생에 한 번 뿐일 내 결혼을
성훈의 결혼을 통해 예행연습 해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이었고,
현실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2.
성훈이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한 것은
지난 해 말이었던가, 올해 초였던가.
하여간 꽤나 오래된 일이었다.

그러나 한참 남아있는 것만 같았던 그 날이
이렇게 이미 과거의 일이 되어버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저 그런 일상이 반복되고 있을 뿐인데
나이를 먹어갈수록 시간은 참으로 빨리 흐른다.

밤을 꼬박 새고 난 후
헐레벌떡 식장으로 향했다.

사회를 맡은 탓에
어느새 또다시 길어진 머리카락을
다시금 짧게 깎곤 불나게 튀어 간다.



3.
공군회관에서 거행된 그의 결혼에
특별한 행사는 없었다.

그의 장모님 되실 분께서는
최근 결혼식에서 수행되는 만세삼창이나 신랑 팔굽혀펴기 등의 이벤트에
극도의 반감을 갖고 계신 분이셨기에
그의 결혼식은 정숙하고, 고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성훈은 연신 싱글벙글이었고,
신부는 세상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4.
그는 그렇게 아저씨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미 체형적으로는 아저씨가 된 지 오래된 그였지만
이제 공식적으로 그는 아저씨이다.

그것은 이제
나와 같이 여자아이들을 만날 수 없다는 걸 의미할 뿐더러
우리가 갖고 있는 살짝 야한 옛 기억들의 죽음 또한 의미하는 일이었다.

이미 그가 결혼할 여인을 만난 이후부터는
나와 그의 여자와 관련된 이야기는 거의 전무하게 되었긴 했지만
어쨌든 좀 아쉬운 일이긴 하다.

아직 인생의 반려자를 찾지 못한 나로서는
함께 작업해 나갈 좋은 팀원을 잃었다는 사실이.



5.
앞서 이야기 했듯이 성훈의 결혼은 내게 있어서
여느 결혼식과는 다른 특별한 무게를 갖고 있는 일이었는데
그것은 사실 너무나도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의 결혼에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다는 걸
이제와서 후회하고, 미안해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빨랐다.
이해할 수 없는 변명이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사실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시간은 너무도 빨리 흘러갔고,
잠깐 눈 깜빡 했을 뿐인데 결혼일이 눈 앞에 다가와 있었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던 일이었다.

지금의 나이에서는
인생의 무척이나 중요할 법한 일이라 할 지라도
너무도 빠르게, 스치듯 지나가 버린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고민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시간에 쫓겨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할 수밖에 없는 게 고작이다.

당신,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으면서 무엇이 그렇게 바쁩니까, 질문한다면
적절한 답변을 찾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바빴고, 시간은 너무 빨리 흘렀다.



6.
신이 내린 내 모든 축복을 담아
성훈, 너의 결혼을 축복한다.

행복하게 잘 살거라.

- achor WEbs.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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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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