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의 어느 날 (2007-12-15)

작성자  
   achor ( Hit: 2485 Vote: 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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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개인

1.
아침부터 K+의 첫 번째 요새전이다.
아침 8시가 예정되어 밤을 새웠지만
시간 계산이 잘못 됐다, 오전 11시다. -__-;



2.
가족과의 저녁식사가 예정돼 있었다.

내 자유로운 일상의 부작용은 약속이 있으면 잠을 자지 못한다는 점이다.
삶이 규칙적이지 않다 보니 내일 몇 시에는 깨어나 있어야 한다는 점이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고,
그것은 나를 아예 잠들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것 문제다.

잠 대신 따뜻한 샤워를 택하곤 버틴다, 버틴다.

이번에는 이쪽에서 모이기로 하여
신림동의 유명한 샤브샤브집으로 향한다.

명성답게 30분은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하루이틀의 이야기는 아닌가 보다.
1층 전체를 대기실로 쓰고 있고, 그 넓은 대기실마저 대기자로 넘쳐난다.

예전 일본여행을 갔을 때
볼품 없는 식당에서조차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에 어이없었던 기억이 난다.
질보단 양을 중시하고, 미식가라기보단 생존을 위한 필수로서 음식을 생각하는 나로서는
기다려서 밥을 먹는 것 어이없다.

샤브샤브는 별로였다.
엄청난 손님을 담당해야 하는 종업원은 분주했고,
그러기에 서비스는 별로였으며,
결정적으로 30분 기다려서 먹을만큼 특별한 맛은 결코 아니었다.
가족용 식당답게 왁자지껄 했고, 아이들은 한없이 투명하게 내 옆을 뛰어다녔다. -__-;

적절한 위치와 탁월한 홍보, 그리고 적당한 수준의 맛이라면
이렇게 문전성시를 이룰만한 식당을 차릴 수 있겠구나 생각하는 한편으론
그 기반을 만드는 것까지는 자본이 빠질 수 없기에
대개의 소규모 식당들은 그러지 못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이 사소한 식당조차 빈익빈부익부다.



3.
돌아와 긴 하루의 피곤함을 위로하려던 찰나 용민에게서 전화다.
대학동기 지원과 만나고 있단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이 추운 날에 가봤자 뭔 흥미가 있으랴, 싶은 마음에
평소 같으면 잘들 놀라고 말해줬을 것이다.

지원 때문이다.
대학생활을 거의 안 했던 탓에 내겐 학과친구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고,
이 지원마저도 대학 처음 OT 때 같은 조였던, 그 몇 안 되는 친구 중 한 명이다.
졸업 후 변했을 모습이나 한 번 보고자 홍대로 향한다.

택시기사는 여호와의증인 신도이다.
사회적 편견 많은 종교이지만 내 편견은 없다.
성서에 누구보다도 충실한 그들이기에
피곤한 내게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그 종교적 이야기에
네피림과 엘로힘에 관한 질문을 던져준다.

버벅댄다.
아무리 교리를 중시한다 해도 성경은 역시 이론적으로 따져서 생각하기엔 어려움이 없잖아 있겠구나 생각한다.

용민이나 지원이나,
아무리 젊게 입는다고 해도 대기업 대리의 그 모습대로다.
여전히 젊고, 싱그러운 나와는 나이 차이가 느껴진다. -__-;

TINPAN2는 이 추운 겨울날에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엄동설한이건만 여성들의 옷차림은 한여름과 다름없다.
물론 당연히,
나로서는,
좋다.

남자들, 너무 들이댄다.
그 발딛을 틈조차 없는 스테이지에서 서로의 몸은 자연스레 부대낄 수밖에 없을 것인데
이것, 버스나 지하철이었다면 성추행 수준이겠다.
문제는 뒤돌아 봤을 때 부대끼는 남자가 전혀 아닐 때.
홍대클럽 여성들의 비애가 느껴진다.

고시생이자 내 성인나이트 전문 동지인 정규는
여성을 만날 때 한 가지 생각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결혼할 것인가.

그렇게 한 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남성이 성적으로 추해질 수 있는 많은 부분을 인내해 낼 수 있다고 한다.
말만 그렇게 하고, 매일 성인나이트 가자고 졸라대는 정규. -__-;

친구들 중 가장 먼저 결혼했고,
내가 결혼식 사회까지 봐줬던 경진은
고등학생 시절 야타로 만난 연상의 여성과 결혼을 했다.

물론, 그래서 결혼할 수도 있겠지...

귓청을 째는 음악 속에서 함께 흐느적거리고 있지만
느끼는 건 음악이 아니라 2007년의 사회다.

한쪽에는 이념이나 철학, 이상과 사회는 접어둔 채
직업교육원과 같은 대학에서 취업준비에 코피 쏟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개인과 가정, 국가와 민족에 대한 고민은 접어둔 채
순간의 향락과 본질적인 이성에 탐닉하는 사람들이 있다.

갈수록 문학과 예술, 문명과 관념을 중시하는 자들은 사라져 가고,
또 그런 자들은 사회에서 패배자로 낙인 찍히는 세상이다.

살기 힘든 사회이고,
아름답지 못한 사회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 해도 31살에 홍대클럽에서 젊음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물론 21살의 누군가에겐 이 아저씨들, 왜 이래, 하는 주책이자 민폐가 될 수도 있겠지만. -__-;

이것은 스포츠이다. 기록을 늘려나가기 위한.
내년엔,
32살 홍대클럽 입성이라는 새로운 신기록을 세우게 될 것이다.

- achor


본문 내용은 6,169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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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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