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은? (2011-11-03)

작성자  
   achor ( Hit: 2259 Vote: 4 )
홈페이지      http://empire.achor.net
분류      정치

패널로 참여하고 있는 한 설문조사 기관에서 정국현안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을 던져왔다.
질문 중에는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도 있었는데
나는 고민 끝에
진보도, 중도진보도 아닌 중도를 선택하였다.
불과 몇 년 전이었다면 나는 틀림 없이 진보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간 나는 내가 진보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데에 스스로 만족감을 가져왔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이미 진보라고 하기엔 생각의 차이가 큰 상태였다.
오늘 뉴스만 해도 그렇다.

나는 내 피 같은 세금으로 나와 아무 관련 없는 서울시립대 학생들의 등록금을 타 사립대의 1/4 수준으로 인하하는 데 써버리는 걸 이해할 수 없다.
물론 타 대학교에 귀감이 되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는 걸 모르진 않으나
그 돈으로 이미 1/2 수준의 서울시립대 등록금을 1/4로 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더 시급한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많으리라 보고,
또 세금을 내는 내 입장에서도 더 만족스럽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FTA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도 ISD에 대한 우려도 있고, 또한 그것이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는 있지만
점거가 아닌 협상을 통해 진행해야 하는 게 맞고, 특정 계층의 보호도 중요하지만 국가 전체의 미래도 생각해야 하며,
또한 FTA 자체는 반드시, 그리고 조속히, 그러면서도 신중하게 체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이러니 나는 진보, 혹은 중도진보를 선택해선 안 됐다.
이것저것 섞여 있어 정확하게 내 정치적 성향을 판단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나는 이미 지금 시대에 스스로 진보라 이야기 하는 자들과는 생각의 차이가 생긴 게 분명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결국 이기적인 게다.

물론 나는 자동차 회사에 다니기 이전에도 FTA에는 찬성하는 입장이긴 했지만
FTA가 체결되면 아마도 내 성과급은 오를 것이고, 그것은 내 직접적인 혜택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서울시립대의 등록금이 지금보다도 반으로 주는 게 내게 직접적인 혜택이 된다면 나는 찬성을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 내가 무상급식에 대해 적극적으로 찬성하지 않았던 까닭도 내가 당장 직접적인 혜택을 받는 게 없기 때문이었기도 했다.

결국 인간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취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자세가 인간적으로는 스스로의 양심에 거스르진 않지만

또 반면 워런버핏이나 빌게이츠의 버핏세를 생각해 본다면 정당하다고까지는 생각하기 어렵기도 하다.
인간이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을 추구해서는 안 되는 게 사회적으로는 양심적이기도 하겠다.

1여 년 전 강남좌파들의 출현이 화제가 된 적도 있긴 하나
기본적으로는 가진 게 많을 수록, 지킬 것이 많을 수록 변혁을 두려워 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고,
어느덧 직장과 가정을 갖게 된 나 역시도 지금의 안락함이 별 탈 없이 지속되길 내심 희망하고는 있는 것도 같다.
하긴 한창 진보적이었던 20대 때에도 나이가 들면 나 역시도 보수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귀결을 예상은 하고 있었고,
그러한 생각이 보수진형을 마음으로는 이해했던 핵심이긴 했었다.

다만 한 가지
그냥 그렇게 그대로, 스스로를 정당화 하기 보단 이토록 장구하게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진보적인 자세를 취했던 시절에 가졌던 스스로의 양심을
그래도 아직 조금은 갖고 있다는 반증임은 분명하다.

- achor


본문 내용은 4,793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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