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사사 게시판』 30941번
제 목:(아처) 문화일기 116 きょこ
올린이:achor (권아처 ) 98/12/16 21:53 읽음: 18 관련자료 있음(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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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きょこ, 村上龍, 민음사, 1995, 소설
얼마 전 한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넌 きょこ 속 남자주인공과 비슷해"
대개 무라카미 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마약에 깊이 빠져있다거나 섹스에 찌들어있다거나
변태, 마조히스트 내지는 정신착란증을 겪는 이 등
독특한 무언가를 갖고 있기에 왠지 불안했다.
문제는 직접 부딪쳐 해결해야 하는 법.
'きょこ에서 어떤 모습이 나오기에 나와 비슷하다고 할까'란 생각으로
난 책을 들기 시작하였다.
분명 기존의 류와는 차이가 있었다.
이 속엔 그답지 않게 섹스도, 마약도 없었다.
어린 시절 환상을 찾으려는 한 여자와
말기 AIDS에 걸린 히스페닉계 게이의 여행이 주된 테마였다.
그렇지만 역시 류였던 것은
그 지극히 개인적인 인물의 감정 설명들,
그리고 보잘 것 없는 사물에 감정을 실어 말하는 배경 설명.
한 때 난 류나 하루키 같은 작가들이
일반 저잣거리의 통속작가로 여겨지는 것에 반대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그들-특히 류는 심하다-의 소설 속에서
포괄적인 의미의 흥미 이외에는 더이상 발견해낼 것이 없음을 깨달았다.
물론 사고의 확장이나 간접 경험의 확대가 중요치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그 개인적인 느낌들의 나열로부터 이제는 벗어나고 싶다.
감성은 이만하면 됐다. 난 눈물을 믿지 않는다.
다시 きょこ로 돌아가서,
이 책의 가장 특이한 점은 시점의 변화였다.
김미진의 '우리는 호텔 캘리포니아로 간다'를 읽은 후기에
아직 기록이 남아있긴 하지만
난 학창시절 내가 소설가가 된다면
하나의 이야기를 여러 관점에서 보는 소설을 써보고 싶었다.
(그렇게 끄적댄 게 어정정한 '전위'였고)
여기엔 한 인물의 시점이나 전지적인 시점이 등장하는 게 아니라
그 상황을 대하는 3인칭의 주체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일반 소설에서 느낄 수 없는 독특함은 그것이다.
나 따위가 예전에 가볍게 생각한 것들이
미국의 한 심리학자, 김미진, 그리고 류조차도 이미 했던 걸 봐서는
정말 창조는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책을 읽으면서 きょこ/KYOKO/교코란 인물을 만나보고 싶었다.
사실 그런 여자에게 특별한 매력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그녀의 단점은 세상을 대함이 너무 바보같다는 점이었다.
무고하고 고집이 쎈 여자와 함께 한다는 건
아마 고통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런 여자를 만나보고 싶었던 까닭은
그녀를 바라보는 3인칭 화자들의 느낌,
이를테면 귀여우면서도 섹시하면서도 도도하면서도 신선한,
마치 바람이 스쳐지나간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해보고자 함이었다.
이 책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처럼
그가 은유하는 바가 짙게 드러났던 소설이었는데
호세가 죽으면서 교코의 몸 속에 자신의 춤을 남겨놓았듯이,
작가가 책 속에 자신의 생각을 남겨놓는 것처럼,
재생, 혹은 희망을 이야기하였다.
뭐 어쨌든 좋다.
어차피 류가 내게 주는 것은
진한 감동도 깊은 지식도 아닌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이었으니.
끝으로 '류'와 '민음사'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단 사실을
언제나처럼 별 의미없이 밝혀둔다.
981216 15:30 교코를 한 번쯤 만나보고 싶다.
98-9220340 건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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