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의 사랑 (2002-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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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개인

도시에서의 사랑

디아를 하지 않던 며칠 전에는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계속 그 생각뿐이었다.
영화를 봤던 것도 같고, 만화책을 봤던 것도 같은데...
그럴 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에는 영화와 만화책을 내내 봐댔으니.
그렇지만 그러기에 하루는 훨씬 더 길다는 게 또 다시 문제다.
나는 하루에 영화를 두 편 이상 본 적이 없으니 넉넉하게 편당 3시간을 잡아도 그래봤자 6시간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18시간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

디아를 하면 하루가 금방이다.
메피 몇 번 돌다보면 금새 1시간이고, 카우 몇 번 돌다보면 금새 또 1시간이다.
게다가 아이템 옮기라, 용병 키우랴...
디아를 하기에 하루 24시간으론 부족함이 느껴진다.

친구가 이야기 해준다.
이제 디아 그만하지 그래?

그래서 답변해 준다.
아주 건실하게 변했구나.

건실하게 살고자 한다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모르고 있는 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이빨을 닦고, 머리를 감고,
그리곤 회사를 가든, 도서관을 가든, 무얼 하든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고,
제때 맞춰서 밥을 먹어야 하고,
또 집에 다시 돌아와서는 잠깐 TV를 보다가 가족과 과일을 먹으며 이야기 하고,
그리곤 너무 늦지 않게 이빨 닦고 잠들어야 한다.

나도 1990년대에 이미 다 해봤던 일이다.



그제는 오랫만에 일 때문에 명동에 다녀왔다.
그리곤 신림사거리에서 사람들도 만나 술 한 잔 하기도 했다.
여름이라 그런지 거리는 더욱 화려하고, 섹시하다. 좋다.

그러나 돌아오면 어둡고, 텅빈 내 공간만 남아있다.

얼마 전에는 도시가스가 끊겼다.
그냥 둔 게 한 2주 된 일.
전화를 해보니 지난 3월부터 연체가 되었는데 그 총합이 26,720원이랜다.
쪼잔하게 26,720원 때문에 도시가스를 끊어버리다니.
그렇지만 나 같은 사람이 많아지는 것도 곤란하니 이해할 수는 있겠다.
오직 유일하게 도시가스만 자동이체가 되어있지 않다.
그래서 은행에 가서 직접 납부를 해야하는데 외출을 하지 않는 내게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1990년대에 살았던 삶 대신에
2000년대에 걸맞는 삶을 살고 있는 게다.
이것이 다름 아닌 도시에서의 사랑이고, 도시에서의 삶이란 말이다.
이름만 봐도 그냥 가스가 아니고 도시가스가 아니던가. --;

더럽지는 않지만 정돈되어 있지 않아야 하고,
밝고 화려한 반면 어둡고 쓸쓸함이 있어야 하며,
또한 중독성이 강한 무언가에 빠져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게임이든, 마약이든, 정신병이든, 도시가스든.

그러나 김광식이 대본을 쓰고, 황인뢰가 연출을 한 도시에서의 사랑(로맹가리의 벽 모티브).
그것은 1998년 1월의 작품이 아니던가.

어쩌면 나야말로 1990년대의 도시에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세기말도 없고, 홍콩 반환도 없는.

다만 지금 내 나이 26. 지금은 1990년대의 도시인처럼 살아도 좋다.
오직 지금뿐이다. 이후 다시는 없을.
이것이 내가 꿈꾸던 20대의 삶이었다.

- achor WEbs.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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