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다녀왔습니다. (200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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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 ( Hit: 1531 Vote: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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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을 맞이하여 2001년 추석 이후 가보지 못했던 시골에 다녀왔습니다.
사실은 그간 너무 가보지 못해서 의무방어전인 면도 없잖아 있었습니다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가족에 대한 사랑이 깊어만 지기에
제 한편에서도 찾아뵈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습니다.

2001년에 이미 제 긴머리에 놀라셨던 친지분들이시기에
이번의 폭탄 파마머리는 작은 화제가 될 뿐, 특별히 친지분들을 놀래키지는 않았습니다.

친척 내에서 마땅한 또래가 없던 저는
대개 시골에서 외로운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줄곧 TV나 보고 있었고,
좀 나이 들어서는 홀로 당구장이나 오락실, 만화방을 전전했었으며
더 나이가 들어서는 거리에서 담배나 피며 시간을 축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번 연휴에는 실천하는 정신을 표출하고자
가만히 앉아있다거나 밖을 싸돌아 다니는 것 대신에
직접 일을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별히 큰 힘은 되어 드리지 못했습니다만
음식 하시는 어머니를 많이 도와드리려 노력했고,
가족들과도 싹싹하게 말 잘 하려고 노력하였지요.

며칠 전 보았던 영화 집으로,는 아직까지도 제게 기억이 남아 있기에
재수 없는 도시 아이의 모습을 행여나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노력하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오랫동안 채식주의를 하여 왔고, 지금 현재도 육식을 즐기는 편은 아니기에
설날 고기가 둥둥 떠다니는 떡국을 먹은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또한 잔뜩 가슴 부풀어 올려져 고요히 뻗어있는 하얀 닭 같은 것에도 전혀 손을 대지 않았었는데
올해는 처음으로 떡국이나 그런 음식들을 먹고 왔지요. --;

어린 시절 깐깐하게 반찬투정하고, 시골의 음식들이 지저분하다고 생각했던 제 모습에
엄청난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한 셈이지요.

조부모님들의 젊은 모습이 담겨져 있던 옛 앨범을 보면서는
누구에게나 젊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몇 년만에 보게 되니 몰라보게 커버린 사촌 동생들처럼
저 역시도 누군가에게 몰라보게 커버린 한 아이로서 느껴졌을 것이고,
지금의 이 젊음을 거쳐 결국은 인생의 황혼기로 접어들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청춘의 시간들, 지금 이 순간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꼈던 것이지요.

내려갔다가 다음날 아침, 바로 올라온 짧은 귀경길이었지만
가족애는 많이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내 조부모님과 내 부모님, 내 친척들.
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인지 새삼 진실되게 느낄 수 있었으며,
제가 제 삶에 대해 고민하기에는 삶의 짐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깨닫기도 하였습니다.

철이 든다는 표현이 사회화 되어간다는 의미라면
저는 이제서야 철이 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 achor WEbs. achor


본문 내용은 7,947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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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