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의 사랑 (2002-07-26)

작성자  
   achor ( Hit: 3172 Vote: 42 )
홈페이지      http://empire.achor.net
File #1      20020726_dia2.jpg (51.7 KB)   Download : 176
분류      개인

도시에서의 사랑

디아를 하지 않던 며칠 전에는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계속 그 생각뿐이었다.
영화를 봤던 것도 같고, 만화책을 봤던 것도 같은데...
그럴 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에는 영화와 만화책을 내내 봐댔으니.
그렇지만 그러기에 하루는 훨씬 더 길다는 게 또 다시 문제다.
나는 하루에 영화를 두 편 이상 본 적이 없으니 넉넉하게 편당 3시간을 잡아도 그래봤자 6시간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18시간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

디아를 하면 하루가 금방이다.
메피 몇 번 돌다보면 금새 1시간이고, 카우 몇 번 돌다보면 금새 또 1시간이다.
게다가 아이템 옮기라, 용병 키우랴...
디아를 하기에 하루 24시간으론 부족함이 느껴진다.

친구가 이야기 해준다.
이제 디아 그만하지 그래?

그래서 답변해 준다.
아주 건실하게 변했구나.

건실하게 살고자 한다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모르고 있는 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이빨을 닦고, 머리를 감고,
그리곤 회사를 가든, 도서관을 가든, 무얼 하든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고,
제때 맞춰서 밥을 먹어야 하고,
또 집에 다시 돌아와서는 잠깐 TV를 보다가 가족과 과일을 먹으며 이야기 하고,
그리곤 너무 늦지 않게 이빨 닦고 잠들어야 한다.

나도 1990년대에 이미 다 해봤던 일이다.



그제는 오랫만에 일 때문에 명동에 다녀왔다.
그리곤 신림사거리에서 사람들도 만나 술 한 잔 하기도 했다.
여름이라 그런지 거리는 더욱 화려하고, 섹시하다. 좋다.

그러나 돌아오면 어둡고, 텅빈 내 공간만 남아있다.

얼마 전에는 도시가스가 끊겼다.
그냥 둔 게 한 2주 된 일.
전화를 해보니 지난 3월부터 연체가 되었는데 그 총합이 26,720원이랜다.
쪼잔하게 26,720원 때문에 도시가스를 끊어버리다니.
그렇지만 나 같은 사람이 많아지는 것도 곤란하니 이해할 수는 있겠다.
오직 유일하게 도시가스만 자동이체가 되어있지 않다.
그래서 은행에 가서 직접 납부를 해야하는데 외출을 하지 않는 내게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1990년대에 살았던 삶 대신에
2000년대에 걸맞는 삶을 살고 있는 게다.
이것이 다름 아닌 도시에서의 사랑이고, 도시에서의 삶이란 말이다.
이름만 봐도 그냥 가스가 아니고 도시가스가 아니던가. --;

더럽지는 않지만 정돈되어 있지 않아야 하고,
밝고 화려한 반면 어둡고 쓸쓸함이 있어야 하며,
또한 중독성이 강한 무언가에 빠져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게임이든, 마약이든, 정신병이든, 도시가스든.

그러나 김광식이 대본을 쓰고, 황인뢰가 연출을 한 도시에서의 사랑(로맹가리의 벽 모티브).
그것은 1998년 1월의 작품이 아니던가.

어쩌면 나야말로 1990년대의 도시에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세기말도 없고, 홍콩 반환도 없는.

다만 지금 내 나이 26. 지금은 1990년대의 도시인처럼 살아도 좋다.
오직 지금뿐이다. 이후 다시는 없을.
이것이 내가 꿈꾸던 20대의 삶이었다.

- achor WEbs. achor


본문 내용은 8,161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Post: http://achor.net/board/diary/632
Trackback: http://achor.net/tb/diary/632
RSS: http://achor.net/rss/diary

Share 밴드공유 Naver Blog Share Button

 achor Empire2010-07-26 03:04:14
8년 전 도시가스
8년 전 즈음에는 그해 봄부터 연체된 26,720원 때문에 가스를 쓸 수 없었으면서도 도시가스 정도는 끊겨줘야 도시에서의 삶다운 거라고, 생각해 버릴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http://empire.achor.net/board/diary/632 나는 1990...

 achor Empire2013-01-07 11:37:06
로맹가리의 벽
벽 - 짤막한 크리스마스 이야기 (by 로맹가리) 내 친구 닥터 레이는 클럽 ‘부들스’의 낡고 편안한 가죽 소파에 나와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그 클럽은 영국의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드나들었던 곳이다. 우리는 열기가 딱 기분 좋게 느껴질 정도로 난롯불과 거리를...

Login first to reply...

Tag
- : 8년 전 출사표 (2016-04-13 06:21:28)- 도시: 오류시장 (2024-06-17 01:26:30)

- : 가을 2 (2014-09-10 19:35:41)- : 젠장할 세상 (2001-11-19 17:10:59)

- : 여유 (2003-08-07 01:22:13)- : 출사표 (2008-04-10 20:49:41)

- : 일상의 가치 (2012-05-01 22:59:10)- : 일요일 밤 (2002-10-21 01:30:28)

- : 비트 (2003-05-21 07:15:17)- : 삶에 의미있는 노래를 1곡씩 골라 오늘까지 개인별로 회신주세요 (2015-04-03 10:05:12)



     
Total Article: 1963, Total Page: 273
Sun Mon Tue Wed Thu Fri Sat
  1
초콜릿 [1]
2 3
정책세미나에 다..
4
정영의 합격
삶 [1]
5 6
7 8
칼사사여! 영원.. [3]
9 10 11
삼각김밥 [1]
12 13
14 15
옛 컴퓨터 [2]
16 17 18
드라마 [8]
19 20
칼사사 2002년 8월..
21 22 23 24
먹고 사는 일에.. [3]
25 26
도시에서의 사랑
27
28 29 30 31
일본에 갑니다 [3]
     

  당신의 추억

ID  

  그날의 추억

Date  

  Poll
Only one, 주식 or 코인?

주식
코인

| Vote | Result |
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
추천글closeop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