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사사 게시판』 36441번
제 목:(아처) 개그콘서트를 볼 것인가, 말 것인가.
올린이:achor (권아처 ) 00/05/03 11:26 읽음: 1 관련자료 있음(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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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일, 고대 노천극장에선 개그콘서트 공개녹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날, 같은 시각, 같은 고대 안에선
5월 1일, May Day를 맞이하여
노동자의 인권을 생각하는 대학생들의 궐기대회 역시 있었단다.
나는 개그콘서트가 무척이나 재미있었다며 기뻐하는
한 80년대 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난처해 한다.
이럴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지?
나는 아직까지 대학생은 이 시대의 지성인이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나는 아직까지 대학생은 이 사회의 소외 받는 사람들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꿈꾸던 대학생활과 막상 현실로 대했던 대학생활의 그 괴리감에
난 오랜동안 혼란스러워 했었다.
내가 지식을 쌓아가던 학창시절에 나는
대학생으로서 사회 정의, 민주, 평등 등의 가치를 위해 투쟁하는
혁명전사이길 바랬다.
그런 무형의 이념을 위해 나는 내 목숨을 바쳐
장렬히 전사할 각오까지 하곤 했었다.
그렇지만 나 역시 젊은 날을
거리에서 흥청거리며 소비해 버리지 않았던가.
현란한 조명에 귀청을 울리는 음악 속에서
허무하게 몸을 흐느적거리지 않았던가.
나는 단지 소심한 한 젊은이일 뿐인 게다.
그런 내가 그들에게 무슨 비난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너희들이 개그콘서트 앞에서 가벼운 웃음을 흘릴 때
이 시대의 의식 있는 젊은이들은
무시받고 천대받은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눈물 흘리고 있었다며
그들에게 그 어떤 손가락질을 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난 아직도 시대를 착각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구닥다리, 산업의 격변기가 아니란 말이다.
새천년, 꿈과 희망에 찬 신세계를 맞이하며
어찌하여 아직도 그 헛된 이데올로기의 망상에 빠져있단 말인가.
이제는 쟁쟁한 기술력으로 국가 산업에 일익을 담당하고,
개성 넘치는 색색가지 머리에 독특한 의상으로
튀는 것만이 바람직한 신세대의 표상이니라.
그대여, 꿈을 꾸는가. 너를 모두 불태울 헛된 꿈을.
그렇지만 나는 아직
구닥다리, 이념의 산물이자 쓸모없는 식충이 되고 싶다.
사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채
무형의 가치 속에서 밥만 축내는 사회부적격 인간이 되고 싶다.
아직까지 옛 운동권의 향수를 간직하고 있는 그들은
참으로 불쌍한 삶이다.
무엇엔가 투쟁하고 싶은데 무엇에 투쟁해야 할 지 모르겠고,
무엇엔가 저항하고 싶은데 무엇에 저항해야 할 지 모르겠는
이 시대는
그들에게 오직 사회친화성만을 강요하고 있다.
사라져 가야 한다면 사라질 뿐. 두려움 없이...
나는 아직, 내게 너무도 어울리는 이 사회를 거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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