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처) 늦은 답변 (2000-05-09)

작성자  
   achor ( Hit: 2282 Vote: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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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문화일기

『칼사사 게시판』 36496번
 제  목:(아처) 늦은 답변                                
 올린이:achor   (권아처  )    00/05/09 15:31    읽음: 19 관련자료 있음(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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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그녀가 내게 물었던 적이 있다.
        그 시절 쉽게 답변할 수 있을 것 같았으면서도
        멈칫멈칫 거리며 결국 답변하지 못했었는데

        수 년이 지난 지금,
        이제서야 그녀의 질문에 답변해 본다.


        물론 이제는 이곳을 떠나 다른 누군가와 행복해 하고 있을 그녀가
        내 답변을 못 볼 가능성은 아주 크다.

        그렇지만 아다치는 말했다.


        "알고 있는 거야? 이 시합에서 지면 히데오와 싸울 수 없게 돼!"
        "-그렇게 된다면...그런 운명인 거겠지."
        "포기할 수 있어?"
        "-아니... 운명을 믿는 거지.
         절대 어긋날 수 없게 되어있을 거야. 나와 히데오의 승부는."


        벌써 수 년이 지난 언젠가의 일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런 운명인 거겠지...





        다음은 한겨레신문 기자인 최재봉 씨의 글이다.

        
        <전략>
                베끼기에 관한 장정일의 기상천외한 지적들

        
        이성욱의 글로써 촉발된 표절 논란은 이인화 한 사람의 문
      제로 그치지 않고 동세대의 다른 작가들에게로 파급되어  나
      갔다. 특히 90년대 이후 한국에서 선풍적인 붐을 타게 된 무
      라카미 하루키의 영향은 심각할 정도였다. 그것이 단순한 영
      향을 넘어서 무반성적인 흉내내기와 베끼기에까지  이르렀다
      는 얘기가 돌 즈음, 소설가 장정일이 기상천외한 글을  발표
      했다.

        <'베끼기'의 세 가지 층위>라는 제목으로 <문학정신> 92년 
      7~8월 합본호에 기고한 이 글에서 장정일은 박일문의  <살아
      남은 자의 슬픔>이 하루키의 문체와 '세계관'을  표절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가 파악하는 하루키 문체의 가장 큰  특
      징은 "자신에게 닥친 친밀한 사건이나 사물에 대한"  냉소적 
      거리감인데, 이에 따라 그가 '적발'한 박일문의 문체 '표절'
      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어머니가 죽은   것은 전매청으로선  매우  애석한  일이
      다."(<살아남은 자의 슬픔>)
        "라라가  죽었다.  라라가  죽자  지구는  좀더  가벼워졌
      고..."(<살아남은 자의 슬픔)>
        "그렇게 해서 그녀의 죽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육천구
      백이십이 개비 째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하루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장정일은 박일문이 하루키의 '가벼움'의 세계관을  표절했
      다면서 "왜냐하면 이 작가는 문장뿐 아니라 그의 많은  사유
      를 다독 가운데 베껴 왔으며,  혼자의 힘으로는 단 한  줄의 
      문장이나 사유도 할 능력이 없는 '정신적인 미숙아'이기  때
      문"이라고 주장했다.

        장정일이 이렇다 할 근거도 없이 가히 언어 폭력에 가까운 
      단죄를 한 데 대해서는, 그 자신에게 쏟아지는 의혹의  시선
      을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희생양'을 고른 것이라는 그럴듯
      한 추측이 뒤따랐다. 그것은 그만큼 당시 우리 문단이  표절
      의 악몽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후략>













        어찌하여 우리가 유독 일본 문화에 대해서만
        표절에 민감한지 모르겠다.
        문화적 동질성으로만 이야기하기엔 컴플렉스의 부분이 너무 커 보인다.

        음악을 예로 생각해 보면 쉽다.
        현대의 대중가요는 이미 서구 대중문화의 차용에 불과하다.
        힙합이든, 락이든, 갱스터든
        뭐든 따지고 보면 표절에 가깝다.

        그럼에도 유독 일본음악이란다.
        원조가 아니기 때문일까?
        서구 문화의 습득은 선진 문물의 바람직한 수용이고
        일본 문화의 습득은 외세에 빠진 얼빠진 젊은이란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 것일까.

        문학도 마찬가지.
        하루키가 선보인 허무함 내지는 상실감, 세상을 보는 가벼움은
        이미 중국 반환을 앞둔 홍콩에서,
        또 한 세기, 한 천년을 마감하는 전 세계적으로
        공유한 감상이다.
        그럼에도 유독 하루키의 표절이란다.

        웹디자인에서도 마찬가지.
        검은 바탕에 직사각형으로 표현되는 레이아웃은
        뮤직비디오나 영화에서는 이미 일반적이 되어있고,
        최근에는 CF에까지 불어닥치고 있는 바람인데
        오직 웹디자인에서는 표절이란다.

        그런 건 표절이 아니라 경향이라고 말해야 한다.
        일종의 경향. 시대 조류를 따르는, 동시대 사람들의 감성을 따르는 경향.

        곧 박일문은 하루키의 표절이라기 보다는
        비슷한 심리적 공황에 빠진 감상의 토로라는 게
        더욱 정확하리라는 결론.






                                                            achor Webs.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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