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처) 문화일기 173 결혼은 미친 짓이다 (2002-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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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사사 게시판』 38865번
 제  목:(아처) 문화일기 173 결혼은 미친 짓이다                      
 올린이:achor   (권아처  )    02/05/14 20:52    읽음:  0 관련자료 있음(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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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은 미친 짓이다, 유화, 싸이더스, 2002, 영화, 한국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나는 이러한 사랑 이야기는 이제 전혀 새로
        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그러기에 엄정화의 몸을 전
        면에 내세운, 그저 그런 상업영화겠거니 생각했던 터다. 딴은 그럴 
        것이  여성의 자유로운 성풍속이나 가정주부의 탈선은 굳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TV에서까지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제는 흔해 빠진 일상
        의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선입견이었다.
          소재는  비록 식상했지만 박일문이 수상했던 오늘의 작가상 출신 
        원작답게  최근 내가 접했던 많은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영화는 스
        토리에  힘이 있었고, 대화나 독백에서는 간간히 소설과 같은 여운 
        혹은 중의적인 깊이가 느껴져 왔다. 나는 보면 볼수록 매료되었고, 
        특히  그  결말처리에서는 흔해 빠진 싸구려 영화와 분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이미 결혼하여 아이까지 있는 원작가 이만교 씨가 감히 도발적으
        로 말하는 제목, 결혼은 미친 짓이다! 영화는 이 시대의 결혼을 중
        심으로 사랑과 가정의 의미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작가는  조금  뜨고 싶었던지 제목에 이어 인물과 초반 사건들도 
        도발적으로 만들어 낸다.
          
          영화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중심을 이룬다.
          한 여자를 영원히 사랑할 자신이 없고, 그러기에 거짓말을 할 수 
        없어  결혼하지 않는 준영과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하고, 조건 좋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하는 연희는 시대적 현실감은 상당하지만 바
        람둥이 남자와 계산적인 여자란 그 내역들은 일반적으로 그닥 호감
        가는 모습은 아니다.
          
          게다가  그들이  처음 맞선으로 만나 여관까지 가는 설정은 사실 
        꽤나  작위적이긴  하다. 헌팅이나 부킹이 아닌 다음에야 이런저런 
        관계가  얽혀있는 소개팅, 심지어 더 권위 있을 맞선에서 그랬다는 
        건  얼마나 현실감 없는 이야기인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
        일 게다. --;
          
          그러나 비현실적인 초반 구성과는 달리 인물 설정은 따지고 보면 
        아주 돋보였다.
          
          누군가 내게 왜 일부일처제가 정당한가,라고 질문을 한다면 나는 
        그것에  대한 답변을 해낼 자신이 없다. 내가 모를 까닭에 의해 도
        덕적으로,  관습적으로 일부일처제는 언젠가부터 이곳의 정의가 되
        었고, 그것은 신도, 자연도 승인하지 않은 채로 사회질서가 되어버
        렸다. 심지어 간통죄까지 두루 섭렵한 우리나라에서는 고운 정, 미
        운 정까지 총 동원하여 이미 사랑이 끝난 배우자에 대한 영원한 사
        랑을 강압해 놓기까지 했으니 말 다했다. 곧 준영은 이러한 영원한 
        사랑에 대한 회의, 또한 그것을 강압하고 있는 사회에 대한 영화의 
        첫 번째 시비다.
          
          뿐만 아니라 결혼은 평생 함께 해야 할 의무가 없는 연애와는 분
        명한 차이가 있을 것이고, 이 시대가 소녀적 감수성으로 무장한 사
        랑지상주의자들의  천국도 아닐 것인데 결혼과 연애를 동일한 잣대
        로  평가하여 그 상대방을 강압하고, 또 그렇지 못할 때에 좋지 않
        은  시선을  보내는 사회라면 그것은 사회 문화의 잘못임이 분명하
        다.  결혼에 있어서 사랑 또한 여러 조건의 한 가지이거나 혹은 역
        으로  여러  조건들이 모여 하나의 사랑으로 넓게 해석되어야 함이 
        당연하다. 이것은 연희를 통한 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영화의 (의도
        와 다른) 두 번째 시비다.
          
          영화의  세  번째 시비는 사진을 통한 발견이었는데 이미 시간이 
        흐른  후에 연희가 차곡차곡 쌓아둔, 행복한 얼굴만이 가득한 사진 
        속에서  준영이 깨닫는 것은 아마도 가정의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
        한  가정은 결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고, 준영은 결국 행복
        한 사진을 통하여 결혼에 대한 애착을 찾아낸다. 연희 역시 사랑하
        는  사람과의 삶과 조건 좋은 사람과의 삶 중에서 다시는 찾아가지 
        못할  것 같았던 준영을 끝내 찾아가고 마는데 이것은 영화가 사랑
        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손 들어주는 일이었다. 그것은 미친 짓이고, 
        아무  의미 없는 짓이라고 그간 깎아내렸던 결혼에 대한 완전히 다
        른  해석으로  영화는 결혼에 대해 시비를 걸고 평가절하 하면서도 
        준영처럼 결혼에 깊은 애착과 환상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모아둔 사진이 후에 깊은 의미가 되
        는 모습, 그리고 너무 직설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포괄적이
        지도  않게 연희가 준영을 찾아가는 그 순간 끝맺어지는 적당한 결
        론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영화는 결혼에 대한 환상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
        다. 연희의 결혼을 통해 이 시대의 결혼이 경제적 손익계산서를 바
        탕으로 한 거래에 지나지 않다고 비난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연희의 
        사랑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결혼이 정말 미친 짓일 거라면 그것은 환상으로부터 벗어나지 못
        해  결혼의 본질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어야 한다. 결혼의 참의
        미는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해 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평생을 살아
        갈 한 사람을 골라내는 일이다. 그렇다면 연희의 다소 계산적인 모
        습은  잘못이  될 수 없는 일이었다. 결혼에 있어서 사랑은 성격과 
        외모, 재산과 능력 등이 모두 응결된 보다 큰 의미이어야 한다.
          
          연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조건 좋은 사람과 결혼해서는 안 
        되었다.  결혼할  나이라서 결혼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고, 영화 
        또한  준영의 입을 통하여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이 사람, 너무나
        도 결혼하고 싶어서 그래서 결혼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지금은 결혼
        할 때이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연희는 좀더 마
        음을 정리하여 결혼할 한 사람을 선택해야 했고, 그 사람을 사랑하
        며 결혼했어야 옳다.
          
          어린 제자의 사랑을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해서 자유연애주의자인 
        준영의  모습을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한 것은 영화의 또 다른 실수
        가  되겠고, 준영와 연희의 옥탑방 생활의 행복한 모습, 그리고 그
        들의 갈등이 사소한 콩나물비빔밥으로부터 시작되는 작은 장치들은 
        영화의 즐거움이 될 수 있겠다.
          
          비록  구태의연한 결혼의 환상에 빠져 역설적으로 미친 짓이라고 
        말하는 결혼 영화였지만 나름대로 힘을 갖고 이야기를 전개한 모습
        이 괜찮은 영화였다.
          
          
020505 00:00 식상한 소재, 짧은 성찰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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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