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나는... (2004-02-19)

작성자  
   achor ( Vote: 17 )
분류      개인

1년 전 나는
정말로 많이 우울해 했었다.

그게 벌써 1년이나 되었다는 데에 한 번 놀랐고,
그리고 어느새 잊혀져 버렸다는 데에 한 번 놀랐다.

단언컨대 내게 5월 11일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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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 달 동안 ( 2003. 02. 17. )
번호: 449 작성자: achor 작성일: 2003/02/18 05:21:45 조회수: 118 추천: 1
1.
이 이야기를 꺼내는 데까지는 어느덧 한 달이란 시간이 흘러버리게 됐다.
곧 이것은 지난 한 달 동안의 이야기이다.

그간 나는 많이 우울해 했었는데
모든 내 삶의 기록을 어떻게든 남겨 놓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써놓아야 할 지 감을 잡을 수 없어서,
내 기록이 공개되는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솔직할 자신이 없어서,
그리고 제대로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점도
이렇게 시간만을 축내버린 이유가 될 것이다.

지금이라고 무언가 달라진 것은 없지만
더 이상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때의 그 감정들을 잊을 것 같아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전히 솔직하거나 정리된 생각을 기록해둘 자신은 별로 없다.



2.
그간 내가 얼마나 우울했었는가를 표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술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우울해 했었다.

대개 기분이 안 좋거나 좋지 못한 일이 생길 때면
나는 주위 친구들과 술 한 잔 하며 가볍게 풀어버리곤 했었다.
무엇이든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내게 있어서 그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이번 역시 나는 친구들과 술을 마셨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러질 못했다.
나는 한참을 우울해 하는 동안 술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것은
술 등의 다른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할 정도로
내가 너무나도 우울해 했었다는 한 증거일 지도 모르겠다.



3.
게다가 특이한 점은
이번에는 행동에 있어서 일상과 전혀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매일 만나던 vluez도, 밤이면 함께 시간을 축내던 yahon도,
나의 우울함을 알아보지는 못했다.
나는 줄기차게 우울해 하면서도
평소처럼 가벼운 농담을 건내기도 했고, 실 없는 웃음을 짓기도 했었다.

잘잘한 내 감정을 잘 표현하는 편임에도 말이다.



4.
그러나 그것이 내게 치명적이었던가 생각해 보면 그것은 또 아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참을 수 없다.

샤워를 할 때면 오직 한 가지만 생각했다.

지금 나는 치명적인가.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나를 치명적으로 만들 수 있는가.
나를 치명적으로 만들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는 한 건가.

그렇게 완벽하게 빠져버린 우울함 속에서도
결국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극도의 우울함마저 결국은 가볍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버리게 되었다.

내 삶에서 가장 거대한 우울함이
결국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나는 참기 힘들었다.
내 삶을 완벽히 휘어잡고, 뒤바꿔비릴 그 압도적인 힘은
이 처음 느껴본 거대한 우울함보다 더 절대적이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5.
이 우울함은 나를 많이 반성케 했다.
나는 보다 일찍 이런 우울함을 느껴봤어야만 했었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시간이 흘러버린 상황에서도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혼란스러운 건 마찬가지이고, 쳇바퀴 돌듯 이야기는 반복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내가 항상 그 때의 그 반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위안이다.

한 달이라는 시간을 거쳐 내가 맞이한 것은 여전함일 뿐이다.
달라진 것은 결국 존재하지 못했다.

나는 회의했으나
결국 나는 나로서 여전했다.

- achor WEbs. achor


본문 내용은 7,565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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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