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제안을 받은 날이다.
그러나 기뻐할 수 없던 날이기도 하다.
한창 회의 중인 오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회의중이라고 말한 후 이내 전화를 끊곤, 회의가 끝난 저녁 7시가 넘어 연락을 취해본다.
자신감 있는 여성 목소리였다.
대출광고 전화에 괜한 전화를 걸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
다행히도 TM은 아니었다.
오히려 전화 속 상대는 내게 놀라운 제안을 해왔다.
다국적 기업의 e마케팅 팀장.
e마케팅 특성상 한국의 팀장은 중국, 인도, 호주 등 Asia Pacific 전체를 리드해 나가는 역할이라고 했다.
과분할 정도로 엄청난 기회였다.
매해 Fortune에서 가장 일하고 싶어하는 100대 기업 상위권에 선정되는 회사의 Asia Pacific e마케팅을 리드하는 역할인 데다가
홈페이지에 당당하게 적어놓은 문구,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으로, xxxx는 폭넓은 벤치마킹을 통해 직원 대우가 타사에 뒤지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매년 xxxx는 동료들의 다양한 기능과 역할에 대한 보수를 타기업 직원들의 보수와 비교합니다."
보수도 세계 최고 수준일 지 모른다.
모든 것이 완벽했으나,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문제는, 영어.
전화 속 상대가 내게 처음으로 물은 것은 영어 실력에 관해서였다.
당연하게도 커뮤니케이션은 전적으로 영어로 이뤄지며,
한 달에 1회이상 해외출장 시 회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한단다.
순간 갈등했던 것도 사실이다.
영어 잘 한다고, 업무상 아무 문제 없다고 일단 둘러댄 후 나중 일은 나중에 고민할까.
그러나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회사라는 곳이 그렇게 어수룩 하지도 않을 것인 데다
향후 진행될 면접을 통과할 가능성은 0%일 것이다.
눈물을 머금고 영어 써본 지 오래 됐다며 고사를 한다.
설사 내가 엄청나게 영어를 잘 한다고 해도
이후 면접에서 떨어질 확률도 적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아쉬웠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 실망했다.
구체적으로 외국계에 가고 싶다는 열망을 가진 적은 없었지만
직장인으로서 성공을 꿈꾸고 있다면 당연히 일정 수준 이상의 영어 실력은 갖춰놨어야 할 것이었는데
여태 그걸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 한심했다.
기회는 누구한테나 오지만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걸 절실히 실감한 날이다.
어학, 적성에 안 맞는 것 같긴 하지만
소싯적엔 그래도 남들만큼은 했었으니 아직 가능성은 있다고 믿는다.
영어공부 좀 해야겠다.
-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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