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처) 끄적끄적 78 (1999-09-20)

작성자  
   achor ( Hit: 1618 Vote: 0 )
홈페이지      http://empire.achor.net
분류      끄적끄적

『칼사사 게시판』 34367번
 제  목:(아처) 끄적끄적 78                              
 올린이:achor   (권아처  )    99/09/20 23:36    읽음: 45 관련자료 있음(TL)
 -----------------------------------------------------------------------------
        비가 온다. 비. 정말 비가 온다.
        가을에서 겨울로 갈 때면 언제나 비가 온다고 한다.
        날씨가 쌀쌀해진다. 바람이 서늘하다. 선선하다,와 서늘하
      다, 사이에서 고민했던 적도 있던 것 같은데 그게 언젯적 일
      일까...

        기다리던 여름도 가고, 이제는  가을조차 가고 있다. 가을
      이 가고 있다. 가.을.이.가.고.있.다...
        가을에는 사랑을 하기로 하지 않았던가?

        사랑? 사랑!

        제행무상이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변화라면 어쩔 수 없
      는 삶의 긍정을 요구한다.  지구상의 철학사는 변화냐, 불변
      의 무엇이냐, 하고 논쟁해 온 역사다. 그것은 바로 유물론이
      냐, 관념론이냐의 문제로서 같은 토톨러지다. 나는 유물론자
      이며 근본불교주의자니, 변화의 편에  서기로 한다. 나는 변
      화하지 않는다는 헤라클레이토스를 지지하지 않는다. 고정불
      변의 로고스는  없다. 신성스런 로고스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약한  연인들은 영원하다는 헤라클레이토
      스적인 사랑을 나눈다.

        여인들은 영원히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영원한 사랑
      이란 없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만' 당신을 사랑할 뿐이라
      고 말해야 한다. 그러니  모든 사랑에는 말의 가증스런 수사
      가 개입되어 있다. 속이고  속아 주는 파렴치한 사랑은 언제
      까지 계속되어야만 하는가.

        장미와 자는  법,을 다시 읽는다. 역시  참 읽을만한 책이
      다. 세상 주목을 별로 받지 못했단 사실을 믿을 수 없다. 그
      래서 이 책을 구하긴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그러니 세
      상 주목을 별로 받을 수가 없다. 아쉬운 딜레마.

        남자친구 있어?

        반지의 억압을 난  이미 잃어버렸다. 그리하여 남자친구가 
      있든 없든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그런데 묻는다. 영원히 변
      치 않는다? 그게 회의적으로 느껴지면 이렇게 살게 된다.

        아주 가볍게 응,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거짓말이든 참말
      이든 포기하라. 물론 지극히  솔직한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
      만 그건 특별한 일이다.
        아주 가볍게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거짓말이든 참말
      이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있음에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주 뻔뻔한 거짓말쟁이이거나  영원한 사랑은 없다,란 굵은 
      삶의 테마로 구속받지 않는 자유를 꿈꾸는 사람일 게다.
        그렇지만 음, 하며 시간을 끌면서 답변을 유보하는 사람은 
      가볍게 생각할 게 아니다. 없음에도 음, 하며 시간을 끈다면 
      오랫동안 애인이 없어 자신의  매력에 회의를 품은 사람이겠
      고 있음에도 음, 하며  시간을 끈다면 애인도 당신도 놓치고 
      싶지 않은 왕성한 식욕의 소유자. 혹은 성욕.

        일반적 경향이 항상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술집에선 내내 김건모의 음악이 흘렀다. 미련,이 흘러나올 
      즈음에는 김건모가 좋아졌다. 버리고 버려도 끝이 없는 너의 
      그리움...
        참치의 물결이다.

        같은 장소,  같은 이야기, 같은 웃음,  같은 진지함. 모든 
      게 토톨러지다. 일정한 궤도를  주기적으로 도는 기분, 그런 
      날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아, 왜 아직까지  이렇게 살고 있
      지? 커다란 집게로 살짝 끄집어낸 후 다른 사람을 앞에 갖다 
      놔도 테이프에 녹음된 내 입에선 같은 목소리, 같은 톤의 이
      야기가 반복될 게다. 다른 누군가로 얼굴이 바꿔있는 상상을 
      한다. 그래도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는다.

        삶이 고정되다 보면 정말  출근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그 순간을 너무나 사랑할 때, 내 가슴속에 폭 껴안곤 끝까지 
      바라보고 싶은데 아침 9시, 저항할  수 없는 출근이 나를 기
      다린다.

        헌혈차에 올랐다. 쪽지 하나 건네주며 작성하라고 한다.
        동성, 외국인, 불특정 다수의  이성과 성관계를 맺은 사실
      이 있습니까?
        1.예
        2.아니오

        아무리 더.러.운.피.를 혐오하는 헌혈이라 해도 이건 너무 
      개인적이면서도 은밀한 질문이다. 이유 모를 저항감에 예,에 
      체크를 한다.
        잠시 후, 헌혈하지 말라고  한다. 더.러.운.피.는 필요 없
      단다. 가뜩이나 금토일 밤새 술마시느라 정신없었는데 잘 됐
      다고 생각하며 버스를 내려온다.

        일상은 여전히 권태로운 모습으로 날 기다리고 있다. 평범
      하게 맞춰가며 하나의 부속품으로 전락한다.
        전화를 걸어보지만 받지 않는다.

        당신, 무엇이 문제입니까?
        아, 내 문제는 뭐지?  도대체 뭐가 문제이기에 이렇지? 마
      병태만큼의 당당함을 갖추지 못한 난, 세상이 미쳤다고 말하
      지 못하겠다. 존경할  만한 존재론의 창시자 파르메니데스만
      큼의 당당함을 갖추지 못한  난, 세상이 미쳤다고 말하지 못
      하겠다.
        나는 미치지 않았다. 미친 짓은 나 바깥에서 일어났다. 그
      러니 세상이 미쳤다.

        역시 결론은,
        가.을.에.는.사.랑.을.해.야.겠.다.
        혹은 겨울에는. --;
        세상사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는 법이라서. 쩝.








                                                            98-9220340 권아처 

# 1999. 9. 21 02:00 [9]

  - 미련 (최준영 사/김건모 곡/김건모 4집)

  그대가 나를 떠나고 혼자라는 사실 때문에
  얼마나 많은 밤을 숨 죽여 살아왔는지
  오늘도 비는 내려와 젖어드는 너의 생각에
  아무 소용없는 기다림이 부담스러워

  보고 싶었어 눈을 뜰 수가 없어
  살아있는 순간조차 힘겨우니까
  이젠 버릴 수도 없어 널 그리는 습관들
  나 그만 지쳐 잠들 것 같아

  잊을 수 있을 것 같아 스스로 위안도 하지만
  버리고 버려도 끝이 없는 너의 그리움

  미워했었어 나를 떠난 그대를
  보고 싶어 미워지는 내 맘을 알까
  이젠 버릴 수도 없어 널 그리는 습관들
  나 그만 지쳐 잠들 것 같아







  비가 오던 날, 학원 가는 버스에서 잠깐 졸았다.
  쉬고 싶단 생각이 간절하다.
  모두 내팽겨버리고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다.

  한 정거장 지나 잠에서 깨어나
  터벅터벅 비오는 길을 걸었다.

  빨간불 신호등에 걸려 있을 때
  한 여자를 봤다. 내 옆에 서 있었다.

  몸에 달라붙은 하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유독 가슴이 몽긋한 게 아름다웠다.
  만져보고 싶다는 깊은 욕구를 느꼈다.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얼굴은 우산 속에 가려져 있었다.
  아쉬워서 줄기차게 기회를 노렸다.

  가까이 다가가 우산 속을 희미하게 들여다 봤는데
  모자까지 쓰고 있었다.
  베이지색 벙거지.

  그런데 그녀의 가방 뒤에는
  스티커 뱃지가 달려있었다.
  한 남자와 다정하게 웃고 있던 뱃지.

  에잇. 별로 예쁘지도 않네.

  김건모의 미련,을 들을 때면
  예전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할 때가 생각난다.
  홀로 살던 그 시절,
  난 미련을 좋아했던 것 같다.

  에잇. 별로 예쁘지도 않네.






                                                            98-9220340 권아처


본문 내용은 9,178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Post: http://achor.net/board/diary/283
Trackback: http://achor.net/tb/diary/283
RSS: http://achor.net/rss/diary

Share 밴드공유 Naver Blog Share Button

Login first to reply...

Tag


     
Total Article: 1957, Total Page: 272
Sun Mon Tue Wed Thu Fri Sat
      1
(아처) 끄적끄적 75..
2
(아처) 문화일기 15..
(아처) 문화일기 15..
3 4
(아처) 문화일기 15..
(아처) 너를 또 만..
5
(아처) 끄적끄적 76..
(아처) 모든 일에..
6 7
(아처) 문화일기 15..
8 9 10 11
(아처) 초연하는...
12
(아처) 끄적끄적 77..
13 14
(아처) 여전히 아..
15
(아처) 그녀가 사..
16 17 18
19 20
(아처) 운명에 관..
(아처) 끄적끄적 78
21 22 23 24 25
(아처) 끄적끄적 79..
26 27 28
(아처) 유치하다,..
29 30    

  당신의 추억

ID  

  그날의 추억

Date  

  Poll
Only one, 주식 or 코인?

주식
코인

| Vote | Result |
  Tags

Tag  

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